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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미국의 대중동 전략

  • 작성일2018/06/15
  • 분류중동
  • 조회수13,364

I. 개 요

 

1. 일 시 : 2018. 5. 23. (10:30~13:00)  

2. 장 소 : 달개비

3. 발표자 : 인남식 교수 (국립외교원)  

4. 참석자  

김상진(한국무역보험공사, 실장)

안세진(산업통상자원부, 과장)

엄익란(단국대 GCC국가연구소, 연구교수)

장용재(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장철복(스탠다드차타드은행, 상무)

홍성민(중동경제연구소, 소장)

김중관(동국대학교, 교수)

서상현(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이정하(뉴스토마토, 기자)

이권형(KIEP, 아중동팀 연구위원)

정재욱(KIEP, 아중동팀 부연구위원)

장윤희(KIEP, 아중동팀 연구원)

유광호(KIEP, 아중동팀 연구원)

 

5. 제 목  

- 미국의 대중동 전략  

 

II. 주요 논의 사항

 

1) 발제내용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의 존재감이 중동에서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서였음.

 

-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안보전략가들은 소련을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만한 주적으로 주지하였으며 봉쇄전략을 쓰기 시작함.

 

- 미국은 유라시아의 공산주의 진영이 동쪽으로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맺었으며, 서쪽 및 동남아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각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를 결성하는 등 반공 블록을 형성함.

 

- 문제는 문화적 컨텍스트가 다르고 식민지 유산이 여전히 남아있는 중동이었음. 1955년에 바그다드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는 미국이 안보전략적 측면에서 중동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짐.

 

- 경제적으로는 석유의 주 공급처로서 걸프 지역의 중요성이 부상하였으며 냉전과 맞물려 걸프 산유국 왕정과 미국간 안보적 연계가 심화됨.

 

1979년은 냉전의 변곡점으로 국제 정치·경제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였음.

 

- 정치적으로는 덩샤오핑이 중국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가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침.

 

-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진영의 우위가 점점 드러나기 시작하였음. 그러나 안보전략적으로는 역현상이 발생하면서 이란에서는 이슬람 혁명이 일어났으며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진공하는 등 혼란스러운 해였음.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캠프데이비드 협정도 이 때 이루어졌음.

 

이란의 이슬람 혁명과 소련군의 아프간 진공은 미국의 경각심을 높인 가운데 1980년 레이건 정부의 등장으로 상황이 반전됨.

 

- 레이건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투입해 공세적 조치를 취하면서 냉전 체제의 우위는 미국으로 넘어오게 되었음. 이는 네오콘이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냉전 해체 이후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기대가 점증됨.

 

- 한편 하버드대학교 전략문제연구소장이었던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는 화두를 제시함. 헌팅턴은 세계를 7개 문명으로 구분하고 향후 50년간 이슬람과 유대-기독교간 갈등이 격화될 것이며 그 갈등이 어느 정도 안정된 이후 중국 문명과 유대-기독교간 갈등이 있을 것으로 예상함.

 

9.11은 미국에 큰 충격을 줌과 동시에 대중동 전략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됨.

 

- 9.11 주범의 대부분이 미국의 우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UAE 출신이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미국의 중동 외교 및 국가적 전략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대두됨.

 

- 미국은 20021월 연두교서를 발표하며 부시 독트린으로 불리는 새로운 외교 전략(War on Terror)을 제시함.

 

- 부시 독트린의 첫 번째 특징은 도덕적 절대주의로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로 규정함.

 

- 두 번째 특징은 패권적 일방주의로 미국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탈퇴하고 교토프로토콜에 참여하지 않는 등 UN, 국제협약과 같은 다자적 협의를 무시하는 움직임을 보임.

 

- 세 번째 특징은 공세적 현실주의로 미국을 위협할 혐의가 있으면 미국이 먼저 공격할 수 있음을 선언함. 미국은 역사상 동맹국이나 우방이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기 전에 전쟁에 참전한 적이 없고 선제공격을 한 경우가 없었음. 2003년의 이라크 전쟁이 첫 번째 선제공격 사례였으며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은 소프트 파워의 추락을 경험함.

 

- 또한 2002년 발표를 통해 미국은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설정하였는데, Axis가 함의하는 바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을 연상시켜 이를 프레임화하는 것임.

 

이라크 전쟁은 만 8년 동안 지속되며 미국에 큰 손실을 입혔으며 미국 내 반전 여론이 상승함.

 

- 이라크 전쟁을 통해 미국은 2조 달러 이상을 지출하였으며 2011년까지 4,000명 이상의 군사와 8,000명 이상의 국민이 사망하였음.

 

- 전쟁의 피로감이 상승하고 반전 여론이 격화되었으며 미국 중동정책에 대한 전반적 재검토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조성됨.

 

-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등장은 새로운 중동정책 출현의 계기가 됨. 미국의 중동정책에는 두 가지 신화가 작동을 함. 이는 이스라엘과 이란 신화로 미국은 언제나 이스라엘의 편이며 이란은 무조건 적이라는 것임.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 정부와 달리 중동 개입을 거부하고 이슬람 친화 감정을 드러내는 변화를 보임.

 

-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새해인 노루즈 기념 메시지를 통해 페르시아 문명을 찬사하기도 하였으며 이슬람 친화적 입장을 취함. 그러나 테러와 대량살상무기(WMD)는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표명함.

 

- 오바마 독트린은 다원주의, 상대주의, 다자주의로 요약될 수 있음. 중동에서는 원거리 균형외교(offshore balancing)를 취하며 역내 행위자간 세력균형을 통한 안정화를 유지하고자 함. 그러나 중국은 견제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으며 이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Pivot to Asia)으로 이어짐.

 

9.11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중동정책이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미국 중동정책의 양대 신화인 이스라엘과 이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됨.

 

- 이스라엘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의 배경에는 유대인의 로비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나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함. 저명한 현실주의 정치학자인 John MearsheimerStephen Walt의 저서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는 유대인 로비를 공개적으로 지적하면서 공론화하였으며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인용하기도 함. 오바마 정권 동안 미국과 이스라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으며 아랍, 이슬람권에서 미국의 이미지는 회복된 것으로 평가됨.

 

- Flynt LeverettHillary Mann Leverett은 저서 ‘Going to Tehran’을 통해 미국이 이란을 적대시하는 원인을 분석하였으며, 결론적으로 이란에 대한 적대감이 허구임을 밝히고 미국이 이란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함. 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끌어들이기 정책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2013년 이란 대선에서 하산 루하니 대통령이 당선되며 이란 핵문제 협상이 가속화되고 JCPOA가 타결될 수 있었음. 당시 오바마 정권의 대중동 정책 구상은 원거리 균형외교(offshore balancing)로 요약될 수 있는데 중동의 주요 플레이어인 이란,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터키 다섯 나라가 어느 한쪽으로 힘이 치우치지 않고 비슷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편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임. 또한 1979년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였으며 JCPOA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음.

 

지금까지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과 정책을 명시적으로 내놓지 않으면서 대외 전략의 불가측성(unpredictability)을 높이고 있으며 오바마 정부와 대비되고 이익을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음.

 

- 이란 핵합의 파기를 비롯해 쿠바 관계, 파리 기후 협약, TPP 등의 정책은 오바마 지우기 측면에서 나온 것임.

 

- 또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적국보다는 동맹국에 대한 공격이 먼저 이루어졌는데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국제질서 수호보다는 수치로 실현되는 국가 이익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오바마가 추진한 탈신화화와 반대로 신화의 복원에 중점을 두고 있음.

 

-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예루살렘 수도 선언 및 대사관 이전을 추진하는 등 이스라엘과의 관계 복원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음.

 

- 주이스라엘 대사관 이전을 발표한 시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악의 지지율을 보였던 시기로 이를 통해 내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국 근본주의, 복음주의 기독교인 및 시오니스트의 지지를 결집시키고자 함.

 

- 이스라엘 정책으로 중동 이슬람권에서 반미정서가 확신되었으며 두 국가 해법(two-state solution)은 실질적으로 무력화된 상황임. 또한 통합 예루살렘론과 동서 분리 예루살렘론의 논쟁이 상존함.

 

- 이란과 관련해서는 중간 선거까지 최대 압박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며 이후 JCPOA 파기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해 유럽을 통한 협상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됨. 12개 요구사항 모두를 강요하기보다는 가능한 옵션을 중심으로 타결을 시도할 수 있을 것임.

 

미국의 대중동 정책은 냉전 직후 격동을 한번 겪고 9.11 이후 부시, 오바마, 트럼프 정부를 거치면서 변화를 보임. 미국은 중동에서 새로운 전략을 찾고 있으나 중동 내 미국의 입지가 많이 약화된 상황이며, 초강대국의 권력 공백을 러시아가 메우면서 권위주의가 오히려 덕(virtue)이 되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정치발전의 순경로가 아니라 맥락이 맞지 않고 균형 잡히지 않은 개념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우려됨. 이라크 전쟁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누구도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는데 그 중요한 계기 중 하나는 아랍의 봄의 결과가 중동을 더욱 극단적 혼란으로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임.

 

2) 토론 내용

 

(이권형 연구위원) 친이스라엘 정책이 단순히 로비만이 원인이 아니라면 다른 원인은 무엇이 있을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선제공격이 아닌지?

 

- (인남식 교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의혹이 있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알카에다 테러범의 신병 인도를 거부한 탈레반이 알카에다와 손잡고 미국을 공격한 개념으로 보고 있음. 학자들마다 해석이 다르지만 이라크를 미국의 첫 번째 선제공격으로 볼 수 있으며 아프간은 선제공격한 사례가 아니라고 생각함.

 

-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은 한미동맹, 미일동맹, NATO, 이스라엘과의 동맹으로 볼 수 있음.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은 군사동맹이고 NATO는 집단적 동맹이나 이스라엘은 서류 하나 없는 동맹임. 이를 두고 인지적동맹(cognitive alliance)으로 표현하기도 함. 1970년 이전까지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그렇게 가깝진 않았음. 1970년대 들어 이러한 관계가 전환되는데 1970년대 후반 이스라엘이 자국을 기독교에 중요한 국가임을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이 하나의 요인이었음. 또한 1970년 말부터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의 보호를 받기 위해 국가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중동의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로 기능하면서 가치를 높임과 동시에 소비에트 관련 정보를 획득하여 미국에 전달하는 전략을 취함. 결론적으로 미국과 이스라엘간 동맹 관계는 의회에서의 로비에 더해 공공외교, 종교, 전략적 접근, 경제 부문에서의 실질적 영향 등이 복합적으로 적용된 결과라고 할 수 있음.

 

(김중관 교수)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음. 미국이 여러 차례 핵무기 사찰을 했으나 실제로 대량살상무기는 없었으며 미국도 이를 알았을 것임. 미국은 경제적, 군사적 헤게모니 차원에서 이라크에 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함. 미국이 원한 것은 이라크 해체를 통한 중동의 구심점 파괴라고 본다면 미국이 이라크에서 원한 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음. 다만 전쟁이 길어지며 마무리가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

 

(김중관 교수) 트럼프 행정부의 경우 이전부터 보여 온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임. SNS 등을 통해 의견을 먼저 표함으로써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보는 전략을 취한다고 볼 수 있음. 이는 독자적인 의견으로 부동산 사업을 이끌었던 사업가 기질이 반영된 영향도 있을 것임.

 

(서상현 수석연구원) 시리아 내 이란 세력이 강화되면서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향후 이스라엘과 이란 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지? 전쟁까지 가게 될 것으로 보는지?

 

- (인남식 교수) 시리아 문제와 관련해서 이란과 이스라엘간 전면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봄.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려면 벙커버스터가 필요하나 공증급유가 없으면 돌아올 수가 없음. 공중급유를 하든지 터키 등에 착륙 후 다시 이륙해야 하는데 현재 아랍권에서 이스라엘의 공중급유를 허락할만한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바레인 정도이고 이 국가들도 그만큼의 지원을 해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임. 제일 우려가 되는 것은 시리아 내 이란 기지에 대한 공격으로 이란은 이를 레버리지로 사용할 것임. 또한 중요한 것은 러시아의 역할임. 러시아와 이란 사이에도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하며, 러시아는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이란은 이스라엘의 긴장수위를 높이고 이를 핵협상을 위한 레버리지로 사용할 가능성이 있음.

 

(안세진 과장) 유럽의 대이란 정책은 어떠한지? 최근의 이란 핵 문제, 이스라엘 문제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간 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

 

- (인남식 교수) 유럽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이란에 대한 큰 불만이 없음. 프랑스는 새로운 정치적 돌파구가 필요하고 그것이 이란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음. 그래서 JCPOA를 통해 빠른 속도로 이란에 들어가고 있었으나 미국에 의해 또 위기를 맞게 됨. 프랑스 입장에서는 이란과의 비즈니스를 추진하려고 할 것임. 프랑스와 독일이 JCPOA 관련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나 트럼프 불확실성이 큰 상황임.

 

- 사우디아라비아는 정상화된 이란이 두려운 것임. 이란이 핵보유를 하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 입장에서는 내부적으로 주적을 만들어 대응하기에 전략적으로 더 좋음. 사우디아라비아는 향후 JCPOA와 같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미국에 계속 로비를 할 것임.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란을 때리기만 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국내적으로는 최소한의 면피용 개혁을 추진하고 있음. 방향은 설정되었으나 두 가지 전략 모두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임.

 

(이권형 연구위원) 이란이 시리아 내 군사시설을 철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이란이 수세에 몰리게 되면 이런 부분까지 양보를 해야 하지 않을지?

 

- (인남식 교수) 이란은 시리아 내 군사시설을 협상 카드로 사용할 것으로 보임. 이란 군사시설은 시리아 남쪽에 밀집되어 있는데 이곳은 이스라엘이 보이는 지역임. 이렇게 배치한 것은 이스라엘을 의도적으로 도발하기 위한 목적이 있음.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부담을 덜기 위해서도 이란 병력을 이동시켜야 할 텐데 관련 사항을 협상조건으로 걸면 이란은 이를 강조하며 협상을 이끌어 나갈 것임. 우라늄 농축 정도 등 숫자를 가지고 협상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협상을 위해 이란은 존재감을 드러낼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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