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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기고] 그리스 유로존 탈퇴하나…국민 80%는 잔류 원해

  • 언론사
  • 저자강유덕 유럽팀장
  • 게시일2012/06/01 00:00
  • 조회수2,596

지난 5월 6일은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와 그리스 총선이 동시에 치러진 선거의 날로 세계의 관심이 유럽으로 집중됐다. 프랑스 대선이 향후 유로존 내에서 독일·프랑스 쌍두마차의 한 축을 이끌 프랑스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 총선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연이은 유럽 재정위기로 5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겪고 있는 그리스 국민들의 정치적 불만이 표출되는 자리였다.

 

그리스는 지난해 11월 파판드레우 총리의 사임 이후, 좌파인 사회당(PASOK)과 우파인 신민주당이 주축이 된 과도연립정부에 의해 국정이 운영되고 있었다. 총리에는 유럽중앙은행 부총재 출신인 파파데모스가 임명됐는데, 정치 경력이 일천한 경제관료 출신을 총리로 임명한 데에서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과도 연립정부의 목표는 그리스의 2차 구제금융과 채무재조정을 성공시키는 것이었으며, 연립정부에 참여한 각 정당 지도자들은 2차 구제금융에 앞서 EU-IMF에 긴축에 대한 동의서한(MOU)을 제출한 상태였다. 결국 지난 2월 21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는 1300억유로의 그리스 2차 구제금융안이 승인됐으며, 2월 29일 구제금융의 최대 물주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의회에서의 표결이 이뤄졌다. 독일 연방하원은 찬성 496표, 반대 90표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2차 구제금융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독일 정계는 그리스에 대한 추가적인 구제금융이나 유럽안정메커니즘(ESM)의 증액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결정은 그리스를 유로존에 붙들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2차 구제금융과 함께 민간 채권단도 보유 중인 국채의 53.5%(1070억유로)를 국채 교환을 통해 탕감해 주기로 했다. 유럽중앙은행도 그리스 국채 보유로 인한 차익금인 120억유로를 그리스 중앙은행에 양도하기로 해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를 줄이고자 했다.

 

◆ 시리자 집권하면 디폴트 가능성 높아져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디폴트 위험이 일시적이나마 감소했다면, 위기는 정치 속에서 재발됐다. 5월 6일 총선에서는 연립여당인 신민주당과 사회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했으며, 긴축에 반대하던 급진좌파연합당(시리자)이 제2당으로 약진했다. 그리스는 1970년대 민주화가 이뤄진 이후, 신민주당과 사회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해 온 사실상 양당체제 국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시리자가 16.8%의 의석을 획득하며, 52석을 차지해 1위인 신민주당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세 정당은 차례로 연정 구성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함으로써 그리스는 6월 17일에 재선거를 실시하게 됐다.

 

시리자가 집권하고 EU-IMF의 구제금융 조건을 거부할 경우 EU-IMF와 갈등을 겪을 것이 자명하며, EU-IMF의 자금 지원이 중단될 경우 그리스는 디폴트에 직면하게 된다. 그리스는 기초재정수지(세입-세출) 자체가 적자이므로 구제금융이 중단될 경우 재정부족 현상에 직면할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 재정지출을 지원하는 ‘화폐화’ 조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탈퇴해 기존 화폐인 드라크마화를 다시 채택하는 수순을 밟게 되는 것이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는 모든 것이 정치에 달려 있다. 선거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국민들은 긴축에 지쳐 EU-IMF의 구제금융 조건이 철회 또는 완화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시리자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그리스 국민의 80%가 유로존 잔류를 희망하고 있으며, 이를 감안해 시리자 당수인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집권하더라도 유로존에 잔류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로존 금융시장의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IMF에 동의서한를 제출한 신민주당과 사회당이 연정을 통해 집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시리자의 유화적인 제스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주장은 여러 면에서 설득력을 갖는다. 자국 화폐를 되찾게 될 경우, 평가 절하를 통해 수출경쟁력을 회복할 수 있으며, 통화정책을 통해 재정정책을 보완할 수도 있다. 물가 상승률이 우려될 수도 있으나, 비상시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실시한 것과 같은 화폐화를 통한 양적완화를 실시할 수도 있다. 산업경쟁력을 회복하고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적 평가 절하(internal devaluation)라고 지칭되는 임금 삭감보다는 화폐의 평가 절하(external devaluation)를 통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체감 고통이 적으며, 효과 또한 빠르다는 것이 중론이다.

 

◆ 유로존 탈퇴 시 은행시스템 붕괴할 수도

 

그러나 유로존 탈퇴는 막대한 비용이 초래될 수 있는 선택이며, 탈퇴에 따른 손익계산서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에서 반론 또한 만만치 않다. 유로존 탈퇴는 유로화 표시 채무의 증가로 인해 디폴트가 급증할 수 있으며, 향후 수년간 국제 자본시장에서의 고립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 유로존 탈퇴가 기정사실화될 경우, 국내 은행에서의 자금 인출이 가속화되고 은행의 예치금 부족으로 은행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유로존 회원국으로부터의 자금 지원이 중단될 수 있으며, 탈퇴 과정 또한 법적으로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현행 EU 조약은 유로존 탈퇴에 관한 규정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탈퇴 시 주변국과의 갈등과 채권자의 소송 증가 등에 직면할 수 있다.

 

수입의존형 경제인 그리스의 특성상 드라크마화의 평가 절하는 수입물가 상승을 초래해 물가 상승률이 경제성장을 짓누르는 과거의 양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유로존 탈퇴는 국민적 정서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 속에서 신중히 선택돼야 하며, 주변국과의 원활한 협상이 선행돼야 할 문제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유로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유로존에 미칠 파급효과는 그리스의 대외채무에 대한 기술적 디폴트와 이에 따른 신용경색 현상을 통해 파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가 상승률과 실질실효환율을 감안해 유로존 탈퇴 후의 환율을 추정할 경우, 새로 도입되는 드라크마화는 유로화에 대해 대략 50~60%의 평가 절하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국채의 90% 이상은 그리스 국내법에 기초해 발행됐으며, 유로존 탈퇴 시 법령제정 등을 통해 유로화에서 드라크마화로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그리스 국채(약 3600억유로)의 94%가 드라크마화로 전환되고 향후 드라크마화가 58% 정도 평가 절하된다고 가정할 경우, 산술적으로 채권자들은 화폐 전환으로 인해 1950억유로의 손실을 보게 된다. 전체 그리스 국채 중 민간 부문이 보유하고 있는 비중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62% 수준이므로 민간 채권단에서만 1200억유로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금융권의 대외채무는 계약이 국제법에 근거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이 경우에는 유로화로 상환해야 한다. 그리스 금융권이 도산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그리스 은행에 돈을 빌려준 유로존 은행들에 전가될 수 있다. 공적 지원이 이뤄질 경우 유로존 회원국의 재정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프랑스 피용 총리는 지난 5월 퇴임 직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프랑스 정부에 500억유로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리스에 익스포저(손실위험)가 높은 프랑스 은행 크레디아그리콜(Credit agricole)은 26억유로의 손실이 예상된다.

 

지난 2년간 그리스 시중은행의 예치금은 계속적으로 줄어들어 2500억유로의 자산이 외국으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리스에 익스포저가 높은 여타 유로존 은행에서도 충분히 예견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렇듯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그리스 자체의 경제뿐 아니라, 유로존 전체 경제에 구름을 드리우는 악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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