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미주개발은행·아프리카개발은행…

흔히 은행이라고 하면 예금을 받아 그 돈으로 대출이나 어음거래, 증권인수 등의 일을 하는 금융회사를 떠올립니다. 이와 같은 보통 은행과는 다른 특수한 은행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개발 지원과 같은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설립된 은행이지요. 우리나라 안에서는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이 특수은행입니다.

◆지역개발은행이란

국제적으로도 특수은행이 있습니다. 세계은행(World Bank)이 대표적입니다. 세계은행은 주로 개도국을 대상으로 그들의 경제 및 사회 개발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주는 개발은행입니다. 세계은행은 전 세계 개도국을 대상으로 경제개발자금을 지원해 줍니다. 아프리카, 중남미, 유럽, 아시아 등 지역별로도 경제개발자금을 지원해 주는 은행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행을 지역개발은행(Regional Development Bank)이라 부릅니다. 지역개발은행은 세계은행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서 미니(mini) 세계은행이라고도 합니다.

지역별로 4개의 대표적인 지역개발은행이 있습니다. 중남미 경제사회개발 촉진과 경제통합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미주개발은행(IDB·Inter-American Development Bank), 아프리카지역의 빈곤퇴치를 위해 설립된 아프리카개발은행(AfDB·African Development Bank),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경제·사회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아시아개발은행(ADB·Asian Development Bank), 그리고 유럽부흥개발은행(EBRD·European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이 그것입니다.

미주개발은행은 1959년에 설립되어 지역개발은행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고, 자본금 규모도 1010억달러로 4개 지역개발은행 중 가장 큽니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은 1964년 설립되었습니다. 자본금 규모는 217억달러로 4개 개발은행 중 가장 작지만, 회원국 수는 77개국으로 가장 많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1966년에 설립되었으며, 회원국 수는 67개국입니다. 자본금 규모는 550억 달러이지만 현재보다 3배(165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어서 조만간 미주개발은행을 제치고 가장 큰 지역개발은행으로 부상할 전망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늦은 1991년에 출범한 유럽부흥개발은행은 러시아 및 구소련국가들(CIS), 그리고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시장경제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지역개발은행은 지역별 특성에 따라 그 역할과 기능이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각 지역의 경제·사회개발에 필요한 개발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주개발은행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체 자본이나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활용해 중남미 회원국의 경제 및 사회발전을 위해 직접적으로 돈을 빌려주거나 기술 협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미주개발은행은 사회개발, 경쟁력 강화, 국가경영 현대화, 지역통합, 환경보호 등 다섯개 우선 지원 분야를 정해 놓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미주개발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중남미 국가들에 긴급구제금융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물적 지원 외에도 미주개발은행은 그동안 축적한 풍부한 경험과 고도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중남미 각국의 경제·사회개발정책에 대한 각종 조언도 해오고 있습니다.

◆지역개발은행에 왜 가입하나요

지역개발은행의 회원국 구성은 매우 다양합니다. 지역개발은행 설립 초기에는 주로 해당지역 국가에 국한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회원국 자격을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도 개방해 각 개발은행의 회원국 수는 설립 초기에 비해 크게 늘어났지요. 대표적으로 미주개발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의 경우 회원국 수는 설립초기 각각 20개국, 31개국에서 지금은 48개국, 67개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지역의 국가들이 자기 나라 또는 지역과 관련 없는 개발은행에 굳이 가입하려고 하는 걸까요.

우선 선진국들은 지역개발은행에 가입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경제·사회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게 됩니다. 특히 지역개발은행과 다양한 협력을 통해 원조사업을 펼칠 경우 적은 지원금으로도 보다 큰 원조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지역개발은행이 제공하는 다양한 사업에 참여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미주개발은행은 매년 100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60억~70억달러 규모의 재화와 용역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때 회원국이 아니면 이러한 사업이나 조달시장에 참여하는 게 원천적으로 배제됩니다.

마지막으로는 정치·경제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역개발은행과 협력을 해서 해당 지역 및 국가들과의 경제협력기반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이 중남미지역과의 협력 확대를 위해 15년간의 노력 끝에 미주개발은행에 가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지요. 우리나라도 지난 2005년 미주개발은행 가입을 마지막으로 세계은행을 포함하여 5대 개발은행에 모두 가입했습니다.

◆지역개발은행의 미래는

최근 들어 지역경제통합이 활성화되며 지역개발은행의 필요성과 역할 강화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의 자본금 확충,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논의, 미주개발은행의 구조개혁 추진, 남미은행의 출범 등은 이와 같은 지역개발은행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것이지요. 이에 따라 앞으로 지역개발은행의 위상과 역할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배우는 경제 tip

신탁기금(Trust Fund)

신탁기금은 특정 목적의 사업지원을 위해 제공국이 무상으로 지역개발은행에 맡기는 돈을 의미합니다. 신탁기금은 보통 컨설턴트 펀드와 프로그램 펀드 두 종류로 구분됩니다. 컨설턴트 펀드는 자금을 제공한 나라가 돈이 사용될 분야를 정해두는 걸 말합니다. 이에 반해 프로그램 펀드는 지역개발은행의 각종 지원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목적에 쓰이지요. 과거에는 컨설턴트 신탁기금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최근에는 프로그램 신탁기금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컨설턴트 펀드가 공여국의 입김이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지원받는 입장에서 달가워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신탁기금은 신탁기금을 사용한 개발사업에 자금제공국가만 참여할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에 따라 구속성(tied)과 비구속성(untied) 신탁기금으로 나뉩니다. 비구속성 신탁기금이란 신탁기금을 활용한 사업에 신탁기금 제공국 기업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개경쟁 및 입찰을 통해 전 세계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최근에는 국제관례에 따라 비구속성 신탁기금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아프리카개발은행에 신탁기금을 기탁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는 미주개발은행에 가장 많은 신탁기금(1억4000만달러)을 제공하고 있지요. 주로 중남미 국가들의 빈곤감축, 과학기술 및 혁신, 중소기업육성 지원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신탁기금을 활용해 FIFA(국제축구연맹)와 공동으로 중남미 저소득층 청소년들의 축구사업을 지원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