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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경제비평)위기극복 원칙은 '책임 묻기'

  • 언론사
  • 저자지만수 중국팀장
  • 게시일2008/10/31 00:00
  • 조회수4,872

경제위기 속에서 시장은 때로 제 역할을 못한다. 불확실성이 커져서 경제주체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조적인 게임도 잘 형성되지 않는다.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살길만 도모하다가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그럴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위기 상황에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패닉을 막고, 협조적인 게임의 답을 시장에 제시해야 한다. 최근 각국 정부는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얼어붙은 시장심리를 녹이기 위한 위기대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G20 회의를 필두로 한 국제적인 공조도 추진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특수 상황이라고 해서 시장의 기본적인 원칙이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칙의 하나는 자기책임이다. 자기 행위의 결과는 자신의 것이다. 성공하면 대가를 얻지만, 실패하면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위기대응 정책들은 주목할 만하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심화되자 미국은 그 핵심에 있는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구제금융을 제공했다. 그러나 대신 기존 경영진을 쫓아내고 국유화했다. 부실에 빠진 AIG의 지분도 정부가 인수했다. 얼마 전에는 주요 9개 금융사에 대해서도 지분인수를 통해 국유화 조치를 했다. 영국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취해졌다. 한편에서는 시장경제의 종주국인 미국과 영국이 금융기관을 국유화했으니 이제 영미식 자본주의도 시효를 다했다는 호사가들의 평가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과 영국이 보여준 정책 선택이야말로 자기책임이라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충실한 것이다. 정부는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대신 인수해주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지원의 대가로 소유권까지 확보해 버렸다. 지원만 해준 것이 아니라, 부실을 초래하고 방치한 경영진과 주주에게 확실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사회주의’라는 비아냥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은 시장경제의 외양이 아니다. 자기책임이라는 시장경제의 원칙이다.

결국 구제의 목적은 위기에 빠진 시스템을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지, 어려움에 빠진 특정 경제주체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금융 시스템을 살리는 것과 개별 금융기관을 살리는 것은 원래 별개의 문제다.

한국 경제도 어렵다. 금융기관, 건설업체, 중소기업이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유동성의 숨통은 틔워주어야 하지만, 금융 리스크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 투기에 편승해 팔리지도 않을 집을 지은 건설업체나 그 사업에 돈을 댄 금융기관은 판단 착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알지도 못하는 환투기 상품으로 손해를 보았다고 강변하는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국가 경제를 위해서는 우선 시스템을 살리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을 살리기 위한 정책을 설계할 때, 무책임했던 경제주체들의 책임을 정확하게 묻기 위한 장치도 반드시 함께 고안해야 한다. 미국과 영국에서 하고 있듯이 말이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가장 해서는 안 될 것은 개별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다 해당 시장 전체를 왜곡시키는 정책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미분양이 금융기관의 부실로 확산될 우려가 있다고 한다. 조기에 차단해야 한다. 찾아보면 시스템의 위기를 막으면서 책임도 물을 수 있는 수단이 있다. 그러나 미분양을 해소한답시고 전체 주택시장을 부양한다면 이는 시장의 원칙을 위배한다. 건설업체의 오판 책임을 시장을 통해 묻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을 건설업체의 구미와 기대에 맞도록 만들어주는 꼴이다.

물론 위기 극복 과정에서 자기책임의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 가혹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가혹한 고통을 당하는 것은 국민이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위기 극복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갈지 모르는 경기침체의 고통도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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