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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한·EU FTA, 빠를수록 좋다

  • 언론사
  • 저자김흥종 연구위원
  • 게시일2007/05/15 00:00
  • 조회수4,923
 

최근 서울에서 진행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1차 협상이 끝났다. 양측은 농산물을 포함한 모든 상품의 95%를 10년 내 자유화하고 공산품은 같은 기간에 100%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보통 협상 초기를 탐색전으로 보내는 것과 달리 상당히 진도가 빠른 편이다.  

 

혹자는 지난해 내내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한.미 FTA 협상 타결안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세계 최대의 경제권이자 2대 교역국인 유럽연합(EU)과 이렇게 빨리 FTA 협상을 시작해도 되는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세계 최대의 두 경제권, 게다가 가장 선진적인 경제권과 연이어 시장개방을 논의한다고 생각하면 일리 있는 우려라 할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EU와의 FTA는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좋다.  

 

EU는 최근 몇 년 동안 선진국 가운데 우리의 수출이 가장 빨리 늘어나고 있는 시장이다. 2000년 이후 미국과 일본에 대한 우리의 수출은 매년 1% 내외의 완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데 반해 서유럽 15개국에 대한 수출은 매년 8% 이상 늘어났고 신규 EU 회원국 시장 수출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성장의 모멘텀을 지속시키려면 EU와 수준 높은 FTA를 통해 시장 접근을 극대화해야 한다.  

 

또 EU의 평균관세율은 미국보다 높고, 특히 자동차.섬유.전자 등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품에 대한 관세 수준이 높아서 FTA 체결 시 우리 기업에 큰 이익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평균 실행관세율은 4.2% 수준으로 미국(3.7%)보다 높고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 대한 관세는 10%(미국 2.5%)나 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EU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에 따르면 한.EU FTA 체결 시 국내총생산(GDP)이 16조~24조원(2.0~3.1%) 증가하고 신규 고용이 30만~60만 명 창출된다.  

 

한편 1차 협상에서도 드러났듯이 농업은 EU도 상당히 민감한 분야이기 때문에 서로 신축적인 고려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며, 한.미 FTA에서 뜨거운 쟁점이 됐던 쇠고기 문제도 논의 대상에서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EU가 과거 체결한 FTA를 보면 그들의 개방 수준은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다. 예컨대 칠레와의 FTA(2003년)에서 EU의 양허 범위는 80%였고 즉시철폐율은 43.3%였다. 2006년에 체결된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FTA의 경우 우리의 양허 범위가 84.2%, 즉시 철폐가 15.8%였다는 것과 비교해 볼 때 큰 차이가 없다. 다만 EU는 치즈 등 낙농 유제품과 와인 등 주류 등에 대한 높은 수준의 시장 접근을 요구하고 있으며, 냉동 삼겹살.냉동 닭고기.냉동 고등어.맥아 등에 대해 관세의 조기 철폐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와 부품, 영상기기 등은 한.EU FTA의 최대 수혜 품목으로 전망된다. 2005년도 승용차 부문의 교역을 보면 우리의 대EU 수출은 82억 달러로 EU의 대한국 자동차 수출 8억9000만 달러를 훨씬 웃돌고 있다. 승용차 관세율이 한국은 8%고 EU가 10%임을 미루어 볼 때 FTA 타결 시 수출은 더 늘어날 것이다. 또 2005년 무려 99억 달러를 수출한 영상기기 및 부품도 현행 EU 관세율이 14%임을 고려해 볼 때 수출 확대가 예상되는 분야다. 반면 고급 승용차 및 부품.의약품.정밀기계.정밀화학 분야는 관세 철폐 공세가 예상되고 있으며, 한.미 FTA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화장품 분야의 경우 EU는 우리나라의 기능성 화장품 규정이 사실상 비관세 장벽임을 주장하고 있다.  

 

서비스업에서는 법률.회계.금융 분야에 대한 개방 요구가 높을 것이다. 서비스업은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아 해외 진출에 주력해 온 영국 등 일부 서비스 강국의 주요 관심분야라 우리로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한.미 FTA의 타결안이 협상의 주요 기준선으로 작용할 것이라 예상된다. 연안. 내륙 해운은 우리가 EU에 대해 개방을 요구해야 한다. 지적재산권도 EU의 주요 관심사다. EU는 지적재산권 보호, 의약품 정보 보호 및 지리적 표시의 보호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지재권 보호는 강력한 실행을 통해 실질적으로 보호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며 의약품 정보보호와 스카치 위스키.샴페인 등 지리적 표시의 보호는 세계무역기구 (WTO) 규정 이상으로 요구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환경 규제와 표준이 무역장벽으로 기능할 것으로 우려한다. 6월부터 EU가 시행하는 화학물질 관리정책인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 등 엄격한 환경 기준을 우리는 비관세 장벽으로 간주하고 있지만 EU는 환경보호를 위한 필수적인 규제조치로 보고 있다.  

 

한.EU FTA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EU의 특성을 고려한 협상이 필요하다. 협상에 나서고 있는 EU 집행위원회는 공동통상정책의 범위 내에서 협상의 전권을 위임받고 있기 때문에 권한을 위임받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협상 권한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협상에서는 허용 품목을 일일이 나열하는 포지티브(positive) 접근법을 선호하며, 투자 분야에서는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다루지 않으려 할 것이다. 개성공단의 역외가공 인정 문제는 남북협력사업이 평화를 가져다 주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EU 대외정책의 기본 정신과 부합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양자 협상은 올해 중 4~6회 정도 이루어질 것이다. 1차 협상에 이어 7월과 9월에 공식 협상이 개최되고 마지막 협상이 연말께 이뤄지면 주요 쟁점과 현안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한.미 FTA의 비준이 내년으로 연기될 경우 한.EU 협정문과 동시에 국회에 상정될 수 있다. 한.미 FTA가 먼저 발효된다고 해도 한.EU FTA를 조기에 발효시키면 미국과 EU의 경쟁구도가 나타나 국내 소비자 후생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EU 협상을 지금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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