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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한국이 먼저 로드맵 제시하자-

  • 언론사
  • 저자윤덕룡 연구위원
  • 게시일2007/03/05 00:00
  • 조회수4,364
 

동아시아의 경제적 연관성이 점점 깊어가고 있다. 1990년 이후 2003년까지 역내무역이 차지하는 평균비중을 보면 동아시아가 23.7%로 오히려 유럽의 21.3%를 앞지르고 있다. 증가세를 고려하면 앞으로 역내무역 비중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태국의 금융시장 위기, 중국의 이자율 정책이나 주식가격 변동, 일본의 이자율 등이 우리시장에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우리는 날마다 경험하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는 경제협력을 강화하지 않고는 경제적 안정이나 발전을 도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때까지 동아시아가 지역화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동남아 지역 국가들의 협력체인 ASEAN은 현재 10개국이 참가하는 실질적 자유무역협정(FTA)을 지향하고 있다. 이질성, 합리적 리더십의 부재라는 문제로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나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개방적 지역협력체로 APEC도 추진되었다. 90년에는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제안한 ‘동아시아 경제협의체’(EAEC) 구상이 추진된 적도 있었으나 미국의 견제와 일본의 소극적 태도로 좌절되었다. 그 외에도 중국이 제안한 동아시아 정상회의, 한국이 제안한 동아시아 비전그룹 등 여러 협력체의 추진이 있어왔다.  

 

논의는 무성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이 없던 아시아에 본격적인 경제협력 바람이 불게 된 것은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그 계기이다. 97년 태국에서 발생한 통화위기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한국 등으로 연쇄적인 위기의 확산을 가져왔으나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동아시아 협력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국제금융기구나 APEC도 효과적인 대응체제가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아시아 국가들은 지역협력체의 필요성을 절감하였고 실질적 협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진행되는 경제협력은 ASEAN+3 차원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경제협력은 세가지 분야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정책협의 및 공조이며, 둘째는 실물시장의 경제협력, 그리고 셋째는 통화 및 금융분야의 경제협력이다.  

 

ASEAN의 10개 회원국과 한국·중국·일본의 3국이 참여하고 있는 정책협력이 시작된 것은 97년 외환위기가 계기였다. 아시아 국가들의 위기의식이 팽배했던 97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 개최된 ASEAN 비공식 정상회담에 한·중·일이 초청되면서 ASEAN+3 정상회담이 태동한 것이다. 98년 제2차 ASEAN+3 정상회담은 역내국가들의 거시경제정책 조화, 환율불안정요인 제거, 외환위기 재발방지를 위한 단기자본 관리 등에 대한 공동현안을 다루기에 이른다. 이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 ASEAN+3는 정상회의 외에도 외무·경제·재무 등 주요 각료회의를 개최하고 고위급회의도 열리게 되었다.  

 

한·중·일 3국은 동북아 정상회의와 각료회의를 정례화하여 하나의 지역협력체 역할을 수행하면서 ASEAN과 공동협력체를 구성하는 중첩적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중·일은 또한 개별국 차원에서도 ASEAN+1의 형태로 정책협력을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에서 초기에는 경제 이슈만을 주로 다루었으나 지금은 북핵문제와 같은 정치·안보 이슈도 다루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실물분야에서의 경제협력은 ASEAN+3차원의 협력보다는 양자간 협력이 중심이 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FTA 정책을 보면 개별 국가간에 FTA를 결성하거나 혹은 ASEAN과 개별 국가간 FTA를 맺고 있다. 그 결과 동일한 국가들이 이중적으로 FTA를 체결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일본은 ASEAN과 FTA를 맺었고, 또 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 등과 양자간 FTA를 체결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아직 ASEAN이 회원국의 이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북아 3국간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한·중·일간 FTA문제를 논의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개별국 차원에서 FTA정책이 진행되고 있다. ASEAN+3 차원에서는 단지 IT, 중소기업, 환경, 물류, 표준화 등 일부 분야에서 다양한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 및 금융분야에서는 ASEAN+3차원의 협력이 상대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협력사업으로는 ASEAN+3국가들이 위기방지를 위해 긴급자금을 대출해주는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들 수 있다. 이 협정은 양자간 스와프형태에서 다자간 스와프제도로 전환하고 지원규모도 795억달러에 달하는 긴급자금지원제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들이 저축한 자금을 역내에서 활용하기 위한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을 위한 이니셔티브가 추진되고 있다. 최근에는 동아시아 공동통화를 도입하여 환율협력이나 금융시장 활성화에 이용하려는 논의가 ASEAN+3 연구그룹과 ADB 차원에서 활성화되고 있다.  

 

이처럼 동아시아 경제협력이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ASEAN+3이 공동의 사무국조차 개설하지 못할 만큼 실질적인 경제협력면에서 큰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공동체 의식의 부족이다. 아시아국가들은 아직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서 협력을 제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둘째, 경제발전 단계 및 경제력의 편차가 크다. 상호 다른 경제여건으로 인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기가 힘든 상태이다. 셋째, 과거 역사로 인한 갈등이다. 가깝게는 일본의 강점시대에 대한 문제에서 중국의 동북공정과 같은 역사문제가 협력여건을 저해하고 있다. 넷째, 정치체제와 환경의 차이이다. 선진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국가와 강력한 권위주의가 유지되고 있는 국가들이 존재하므로 협력체제의 모색이 어렵다. 다섯째, 협력경험의 부재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동운명체로서 협력을 추진해본 경험이 적어 아직 합의를 모색하는 기술과 협력방식이 매끄럽지 못한 셈이다. 여섯째, 리더십의 부재이다. 일본과 중국의 주도권 경쟁, ASEAN내에서의 국가간 주도권 경쟁 등이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적극적 리더십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지역협력은 동아시아 지역의 경제안정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필수적 전제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으로서는 경제력이나 정치적 영향력 측면에서 지역협력을 주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북한문제로 인해 오히려 주변국으로부터 정치적인 협조가 필요한 여건이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을 중재하고 협력을 위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벨기에가 유럽통합을 주도하는 국가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강대국 사이에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향한 방안을 미리 제시하는 노력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인적자원을 고려하면 지적(知的) 리더십을 가질 수 있는 역량은 충분하다. 중국·일본과도 신뢰에 기반한 대화가 가능하다.  

 

결국 동아시아의 성공적 경제통합을 위해 한국이 할 일은 먼저 비전과 로드맵을 우리가 제시해야겠다는 결단과 스스로에 대한 적극적 역할부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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