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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재주는 중국이 넘고 돈은 한국이?

  • 언론사
  • 저자지만수 베이징 사무소 수석대표
  • 게시일2007/01/29 00:00
  • 조회수4,342
작년 중국은 10.5% 수준의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2003년 이래 4년째 매년 10%가 넘는 고도성장세다. 우리 쪽에서 보면 급성장 중인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외침만 요란할 뿐 ‘무엇이 중국 위협의 내용인지에 관해서조차 공감대도 없고, 대비책도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위협, 그 실체는 무엇일까?

■중국의 추월·저비용은 위협이 아니다

먼저 분명히 할 포인트가 하나 있다. 중국의 거대한 경제규모·빠른 성장·낮은 요소 비용 등은 중국 위협의 지표가 아니다. 중국은 13억 인구와 한국의 100배에 가까운 영토를 가진 큰 나라다. 중국의 GDP·교역규모는 이미 한국의 3배에 달한다. 중국의 발전단계를 고려할 때, 당분간 고도성장은 계속되고 한국과의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바로 곁에서 거대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다. 놓칠 수 없는 거대시장의 형성인 것이다. 또 다른 관점에서 우리는 중국의 저임금·토지 등 낮은 생산비용을 위협으로 느낀다. 그러나 한국이 선진국을 지향하는 한, 주변국의 저렴한 생산요소를 위협으로 느끼는 것은 난센스다. 원래 선진국은 기본 정의로 볼 때 고효율을 통해 고임금·고비용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다. 저비용을 통해 성장하는 나라가 아니다. 우리가 1인당 2000달러 소득수준의 중국과 임금경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1세기는 국적 불문하고 효율적인 생산요소를 발굴·활용하는 글로벌 생산 네트워킹의 시대다. 이러한 때에 한국에서 1시간 거리 안에 세계적으로 가장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이 존재한다는 것은 한국기업에는 ‘위협’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축복’에 가깝다.

■중국 중화학산업의 취약성

그렇다면 진정한 중국 경제의 위협은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까지 우리가 누려온 이른바 중국특수(特需)의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원래 중국특수는 중국 중화학장치산업의 상대적 부진에서 비롯된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중국의 노동집약적 산업은 빠르게 수출산업으로 성장했다. 연해(沿海)지역의 외자기업들이 그 주역이었다. 그러나 중국 중화학장치산업은 수출산업이 필요로 하는 국제수준의 자본재와 원자재·부품을 공급해주지 못했다. 이들은 주로 계획경제 시절 세워진 국유기업들로 구성되었고, 때문에 외자 도입이나 구조조정이 최근까지도 지체됐던 것이다. 결국 중국은 급성장하는 수출산업이 필요로 하는 자본재·원자재·부품을 가까운 한국·일본·대만에서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들 3국은 대표적인 대중 무역수지 흑자국이며, 한국의 대중수출 중에서 92%가 원자재나 자본재다(2006년 10월).

중국의 취약한 중화학장치산업은 중국의 수출고도화를 지체시켰다. 가령 2006년 중국의 수출 상위 20대 품목(HS 4단위)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노동집약적 공정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전기·전자 관련 품목이 11개에 달할 뿐, 나머지는 거의 의류·가구·신발·가방과 같은 경공업 제품들이다. 반면 한국의 수출에서 중화학공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0년 57% 수준에서 2000년 81%, 2005년 90% 수준으로 급격히 높아졌다(2005년 89.6%). 덕분에 1990년대 중국의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990년 1.9%에서 2005년 2.8%로 오히려 크게 늘어났다. 지금까지는 중국의 수출이 한국 수출을 위협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 위협:산업고도화

여기서 중국 위협의 내용이 분명해진다. 만일 중국이 이른 시일 안에 낙후된 중화학산업의 고도화에 성공한다면, 그동안 중국이 우리에게 수입하던 자본재·원자재가 중국산으로 대체됨으로써 우리의 대중수출이 타격을 받는다. 동시에 중국의 수출품목 구성이 고도화하면서 해외시장에서 우리의 주력 수출품목과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된다. 즉 중국의 산업이 한국의 주력산업과 정면충돌하게 되는 것이다. 이 충돌은 이미 일부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연구(2005년)에 의하면, 한국의 대중 수출의존도가 높은 철강(27.7%) 및 석유화학(34.2%)산업의 경우 중국 내 신규투자에 의한 수입대체가 일부 일어나고 있다. 전자산업에서는 세계시장에서 한국과의 경합이 심해지고 있다. 산업고도화와 대기업 육성에 관한 중국정부의 의지 역시 분명하다. 2006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11차5개년 계획에서는 ?산업구조의 고도화 ?자주적 지적재산권·브랜드를 가진 대기업의 육성 등을 명시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갈 길이 멀다

한국 역시 주력산업의 고도화와 차세대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력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시간을 벌면서, 첨단산업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등 지식산업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낼 수 있다면 큰 충격 없이도 중국 위협을 극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지식산업 단계에 진입한 일본이 좋은 사례다. 한국의 산업고도화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한(對韓) 무역수지 흑자는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다. 2001년까지도 중국에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했던 일본은 2002년 이후 흑자기조로 전환하면서 흑자규모를 키우고 있다(2006년 11월 현재 210억 달러 흑자·중국 정부 통계). 중국의 산업고도화가 일본에는 오히려 더 많은 대중(對中) 수출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장밋빛이 아니다. 한국은 일본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6년 세계 1250대 R&D 기업 중에서 일본 기업은 229개나 되지만 한국 기업은 17개에 불과했다(영국·DTI 자료). 즉 한국이 일본처럼 지식산업화를 통해 중국의 추격권을 벗어날 날은 요원하다. 결국 한국은 앞으로도 최소한 한 세대 동안 현재의 주력산업인 중화학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중국 산업고도화의 위협은 피할 수 없다.

■거리와 속도를 알고 대응해야

다만 양치기 소년처럼 ‘중국위협론’을 남용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늑대가 온다고 소리만 칠 것이 아니라, 늑대가 어디쯤에서 어떤 속도로 오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버릴 것은 버리고, 챙길 것은 챙길 수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의 추격을 지체시키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 중국의 국내 사정이다. 중국 체제안정의 핵심은 8억 농민의 도시 이주에 필요한 일자리 창출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가 무작정 산업고도화만을 추구할 수는 없다. 중국은 노동집약산업과 중화학공업의 균형을 장기간 유지해야만 한다.

둘째, 새로운 세계경제질서다. 지금 세계는 WTO로 상징되는 자유무역의 시대임과 동시에 지적재산권·환경오염·에너지효율·노동조건 등 제품의 생산과정까지 규율하는 공정무역의 시대다. 이러한 국제질서 하에서 정부의 노골적인 산업지원은 어렵다. 또한 전 세계가 공정무역의 관점에서 중국의 산업과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

셋째, 중국의 개방적이고 경쟁적인 기업환경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신규기업의 진입은 상당히 자유로운 반면 기업의 퇴출은 지방정부의 보호나 중앙정부의 규제 때문에 억제되고 있다. 이는 기업의 난립·경쟁과열·수익성 악화로 이어진다. 때문에 중국기업들은 장기성장을 위한 연구에 투자할 재원을 마련하기 어렵다. 또한 있는 자원조차 당장의 경쟁을 위한 기술도입·광고·제품개발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DTI의 1250개 R&D 투자 순위에 포함된 중국 제조업 기업은 4개 전자·통신업체뿐이다. 즉 각 분야에서 장기 연구개발 능력을 갖춘 중국 대기업이 형성되는 데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엔 아직 시간이 있다.

■한국의 전략:기업·교육·개방·투명성

첫째, 중국을 활용해 중국위협을 극복해야 한다. 지금 우리 눈앞에는 중국의 저렴한 생산요소를 누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를 둘러싸고 다국적기업 간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구축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실 중국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기업 간의 요소활용 경쟁이야말로 먼 미래가 아니라 당장 우리 눈앞에 직면한 위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행히 중국의 생산요소를 활용하는 데 있어 한국 기업들은 앞서가고 있다. 2005년 중국의 100대 수출기업 중 10개가 LG·삼성 등 중국에 투자한 한국 전자업체의 생산법인들이다. 이처럼 한국기업들이 중국을 잘 활용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나아가 중국 산업고도화의 주역이 된다면 중국의 산업고도화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둘째, 중국의 산업고도화에 대응할 21세기형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본과 기술 및 생산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시대의 국가 경쟁력의 핵심은 사람과 시스템이다. 특히 진취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고급의 교육과 이들을 유지하고 찾아오게 하는 매력적인 사회시스템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다.

셋째, 자유무역과 공정무역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실천해야 한다. 보호를 통한 산업육성은 이제 더는 한국의 무기가 아니라 중국의 무기다. 지적재산권·환경·노동·보조금 등 공정무역과 관련된 의제에 방어적인 태도로 임할 것이 아니라, 선진국과 보조를 맞추어 의제를 주도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중국의 추격이 공정하고 점진적인 것이 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넷째, 경쟁이 치열할수록 기업과 금융의 시스템 선진화에 매진해야 한다. 지난 경제위기의 경험을 되새길 때, 21세기 전반 동북아의 판도는 각국의 시스템 투명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시스템 개혁을 미루다 또다시 경제위기를 맞게 되면, 한국의 기업들이 줄줄이 중국기업들에 인수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과정에서 승자와 패자가 발생하고 양극화는 더 심해질 것이다. 꼭 중국이 아니라도, 개방화된 세계는 이미 한국의 농민과 일부 중소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야말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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