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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한·미 FTA와 NAFTA는 근본부터 다르다

  • 언론사
  • 저자김원호 선임연구위원
  • 게시일2006/07/04 00:00
  • 조회수4,707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멕시코 경제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열띤 논쟁이 지난 몇 개월간 학계.언론계.관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멕시코를 잘 아는 학자일수록 펜을 들기가 까다로운 주제다.

 

1994년의 NAFTA 발효를 전후해 멕시코에서는 시장개방(86), 경제개혁(89), 외환위기와 평가절하(94), 71년 만의 정권교체와 경제개혁 마비(2001) 등 경제실적에 영향을 주는 사건들이 집중되었고 대외적으로도 9.11사태(2001),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2001) 등 많은 변수가 작용해 NAFTA의 자유무역 효과만을 집어내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긍정론자들은 NAFTA 발효 이후 수출의 급증, 외국인투자 확대, 거시경제 안정을 내세운다. 부정론자들은 저성장, 고실업, 양극화 심화를 강조한다. 두 주장은 대체로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논거 간의 연결고리나 멕시코 경제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NAFTA 발효 이후 경제성장 추이를 보면 페소화 고평가에 따른 경상수지 악화로 발생한 94년 말 외환위기로 95년 -6.2%의 성장률을 경험했지만, 빠른 회복에 성공해 96~2000년 연평균 5.4%의 성장을 기록했다.  

 

이 같은 호황이 가능했던 이유는 멕시코 경제의 대미의존도가 NAFTA 발효 이후 심화되어 미국 경기가 클린턴 행정부에서 호황을 누릴 때 멕시코 경제도 세디요 행정부 때 붐을 탔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연평균 대미 수출 비중이 86~93년 72.3%에서 94~2004년 86.9% 수준으로 높아졌고, NAFTA 발효 이후 유입된 외국인투자 중 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94년 46.7%에서 2005년 65.8%로 꾸준히 증가해 대부분의 신규 생산투자가 미국시장을 겨냥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멕시코 경기가 미국 경기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면서 9.11사태를 계기로 미국 경제가 침체를 겪자 멕시코 역시 불황의 늪에 빠져 멕시코 경제는 2001~2003년 연평균 0.6%의 성장에 그쳤다.  

 

그 뒤 집권 국민행동당은 의회 내 의석을 대폭 잃어 행정부의 경제개혁정책 실행에 제동이 걸렸고 폭스 대통령은 외채 상환과 재정수지 건전화, 인플레 억제에 주력하면서 공공투자를 축소함으로써 2004~2005년 경제성장은 평균 3.6%에 머물렀다.  

 

NAFTA 발효 첫해인 94년 608억 달러였던 멕시코의 총수출은 2005년 2142억 달러로 세 배 이상 늘어나 멕시코는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등장했다.  

 

또 외국인 직접투자도 93년 44억 달러에서 2001년 정점인 271억 달러를 지나, 2005년 138억 달러에 이른 것도 NAFTA의 긍정적 실적 중 하나다.  

 

그러면 이와 같은 성장과 수출, 투자 실적이 왜 전반적인 경제 여건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았는가. 외채위기의 늪에 빠져 있던 80년대 멕시코의 경제 엘리트들은 기존의 내부지향적인 발전모델을 수출주도 발전모델로 전환하면서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선별.육성해야 했다. 그러나 70년대까지의 산업정책을 발판으로 경쟁력을 유지해 온 부문은 유리, 시멘트, 철강, 일부 농가공식품, 석유, 조립가공수출산업(마킬라도라)이 전부였다. 뒤처진 산업기술과 부족한 산업자본을 외국인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이 중 단기간에 육성 가능성이 있는 산업은 마킬라도라였다.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보세수출산업인 마킬라도라는 우리나라의 과거 마산수출공단과 유사한 개념으로 65년 미국과의 국경지대에 설립되기 시작해 72년부터는 내륙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멕시코 정부는 마킬라도라에 외국인투자를 끌어들여 고용을 창출하고 수출을 늘리며 점차 기술 이전을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당초 수출만을 허용했던 판매시장도 내수시장까지 확대해 주었다.  

 

관세 환급 특혜는 NAFTA 303조에 의해 금지됐지만 멕시코 정부가 아시아.유럽 기업들을 위해 별도로 특정산업개발계획(PROSEC)을 수립해 부활됐다.



미국과의 FTA 계획이 발표된 90년을 전후해 마킬라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90년 총수출의 13.2%에 머물던 마킬라도라 수출은 91년 37.1%로 늘어났고, 최근 47% 선에 이르고 있다.


 

마킬라도라에는 자동차, 자동차부품, 전자.전기기기, 의류 등이 집중되어 멕시코 제조업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그 수출 규모는 멕시코 총제조업 수출의 55%를 점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수출과 경제성장, 외국인투자 면에서 괄목할 만한 실적을 보여 주는 마킬라도라는 멕시코 경제의 기본 여건이나 멕시코인의 삶의 질 개선에 기여하는 데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마킬라도라는 저임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한 단기적 정책수단일 뿐 국내기술 기반 강화나 여타 협력산업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후방연관효과가 극히 제한적이며 저부가가치 산업이라는 데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 멕시코가 이를 극복할 유일한 길은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자체 기술 발전에 있지만 멕시코의 R&D 수준은 우리나라(GDP 대비 2.59%)의 6분의 1에도 못 미치는 0.39%에 불과하다.  

 

공공 부문의 R&D 수준이 낮은 이유가 잦은 경제위기를 겪은 정부의 재정지출 축소 의지 때문이라면, 민간 부문은 오랜 정부의 보호 관행 때문에 R&D 지출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멕시코 기업인들은 외국인투자자를 위한 마킬라도라 혜택을 내국인투자자에게도 허용해 줄 것을 요구, PITEX라는 유사한 정책수단을 통해 수출용 원부자재에 관세 환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마킬라도라 산업정책은 멕시코 경제의 발목을 잡는 요소로 남고 말았다. 노동력 면에서 멕시코와 유사한 입지 요건을 갖추고 있는 중국의 부상으로 2000~2003년 외국자본이 마킬라도라에서 대거 이탈하기 시작하면서 23만 명가량의 실직자가 발생하자 멕시코 정부는 법인세율 인하 등의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잔류를 호소해야 했을 정도다. 결국 마킬라도라는 2005년 현재 2003년보다 10만 명 가량 늘어난 116만6000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같이 마킬라도라를 비롯한 수출산업이 여타 국내산업에 주는 효과가 제한적이다보니 보세수출산업의 매출과 수출실적, 고용창출, 임금수준 향상이 내수산업으로 파급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여전히 1.8%의 인구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는 멕시코에서는 매년 신규 노동인력이 2.5%씩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늘어나는 노동력에 충분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연평균 5~6%의 성장을 이룩해야 하지만 최근의 성장 추이로 볼 때 실업률을 떨어뜨리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멕시코에는 미국의 무역조정법(TAA)처럼 FTA로 인한 실직자 구제나 전직 교육과 같은 사회보호망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  

 

멕시코의 경제.산업 여건과 우리나라의 여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서로 다른 조건이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을 무시하고, 멕시코가 겪은 어려움을 우리도 똑같이 맞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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