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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소식

중국, 외국기업에 기술 이전 요구 거세질 것

  • 언론사
  • 저자은종학 부연구위원
  • 게시일2006/04/25 00:00
  • 조회수4,913
후진타오(胡錦濤)가 방향타를 잡은 중국이란 거대한 선박이 항로를 수정하고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25년간 연평균 9.6%에 달하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 정부는 기술의 대외 의존성과 자국 기업의 혁신 능력 부재에 주목, 이를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중국호의 항로 수정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최근 확정된 제11차 5개년 계획(2006~2010년)과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 계획(2006~2020년)이다. 두 계획은 모두 올해를 원년으로 해 향후 5년과 15년에 걸쳐 중국 중앙 및 지방정부의 정책 밑그림으로 사용된다. 바로 이 계획들 속에서 새로운 기운이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계획 속에 공히 키워드로 등장한 자주적 혁신(自主創新)이다. 말 그대로 외국에 기대지 않고 중국인 스스로 기술 혁신을 이뤄 내자는 뜻이다. 밋밋한 구호로 들리지만, 자주적 혁신은 현 후진타오 체제의 현실 인식과 정책적 지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왜냐하면 자주적 혁신의 추구는 개혁.개방 이래 중국이 줄곧 채택해 온 이른바 시장-기술 교환(市場換技術) 전략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기술 교환 전략은 외자 기업들에 중국 시장을 열어 주는 대가로 선진적인 기술을 얻어낸다는 전략이다. 종전에 중국 정부가 이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에 따른 활발한 기술 이전과 파급 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물론 FDI 유치 성과가 없지 않았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05년 이미 1700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에서 차지하는 하이테크 산업의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이 분야의 수출 역시 크게 늘었다. 그러나 속내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의 자기 반성에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이테크산업 분야 생산과 수출의 주력군은 중국 토종 기업이 아닌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이다. 실제로 2004년 중국의 하이테크산업 분야 수출에서 외자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87.3%에 달했다. 정보기술(IT)산업만 보면 중국 내 외자 기업은 산업 전체 매출의 77.0%, 수출의 85.8%, 부가가치 생산의 74.4%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은 내줬는데 기술은 얻지 못했다는 자책이 중국 내에서 일고 있는 배경이다.

같은 맥락에서 중국의 학계와 언론계에는 남미화(南美化) 논쟁이 식을 줄 모른다. 외자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중국이 남미 국가들과 같은 종속적 발전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위협만이 회자되고, 이에 스스로 경직돼 온 우리에겐 낯선 소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중장기에 걸친 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남미화를 피하기 위해 자주적 혁신이란 이름의 항로로 뱃머리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급격한 변화가 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중장기에 걸친 계획인 까닭이다. 하지만 중국호가 가고자 하는 길을 정확히 아는 것은 같은 바다에서 항해 중인 한국호엔 필수다.

두 가지 계획 속에 담긴 정책들은 중국이 남미화를 피하는 한편 미국식 전략대국형과 동아시아식 추격(catch-up) 국가형을 동시에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미국식 전략대국형 정책의 면모는 다음과 같다. 시장에 맡겨 뒀던 연구개발(R&D) 투자에 정부가 다시 적극 나서기로 했다. 1990년 54.9%, 95년 50.0%, 2000년 33.4%로 감소돼 온 정부 재정에 의한 R&D 지출 비중을 4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이원화돼 있던 국방 분야의 연구와 민수용 R&D를 결합해 시너지 효과도 노리기로 했다. 대형 항공기 개발, 달 탐사와 같은 첨단 분야와 지구환경, 생물의약과 같은 기초연구에 보다 많은 재원을 할당키로 했다. 주요 산업 분야에서 중국이 스스로 개발한 기술표준을 적극 채택하기로 했다.

동시에 중국은 동아시아의 성공적인 경제 추격 국가의 경험 또한 참고하고 있다. 과거 한국.일본처럼 수입검색하기한 기술을 소화.흡수.재혁신함으로써 기술역량을 쌓아올리는 데 노력을 경주키로 했다. 이에 더해 40여 만 개에 달하는 중국 진출 외자 기업에 산재해 있는 여러 기술을 중국의 수요와 환경에 맞게 새로이 조합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이른바 조합 혁신을 추구키로 한 것 역시 개발도상국의 면모다.

미국식 전략대국형과 동아시아식 추격국가형을 혼합하는 만큼 중국이 추구하는 산업 영역은 매우 넓다. 일반 제조업은 물론 IT.신재료.생물의약.우주항공.에너지 등. 우리의 전략산업을 모두 포괄하고 남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중국은 이들 산업의 기술역량 강화를 위해 정부가 혁신적인 국산 제품을 우선 구매해 주고, 중앙 및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서 국산 설비의 구매 비율을 60% 이상으로 유지하며, 기업의 기술개발 비용의 1.5배를 기업소득세에서 공제하는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중국을 우리는 어떻게 읽고 대응해야 할까.

우선 중국 당국의 계획 내용에 압도될 필요는 없다. 자칫하면 남미처럼 될지 모른다는 중국 당국의 자성에서 비롯된 중장기 계획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중국이 자기 반성 위에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한다 해도 아직 우리에게 준비할 시간이 있음을 뜻한다.

둘째 중국이 육성코자 하는 산업은 우리가 포기하고, 새로운 산업을 찾아가자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중국이 펼친 그물의 폭은 매우 넓다. 지금 우리가 우위를 지키고 있는 산업, 미래 중점 산업 모두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중국이 하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다 보면 진정 패닉에 빠지고 만다. 오히려 같은 산업 내에서라도 기술 우위를 확보하면 중국과의 수직적 분업을 통해 한국호가 순항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현재의 경쟁 우위와 기술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자 기업을 보는 중국의 눈빛이 바뀌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아무 투자자에게나 환영의 꽃다발을 안겨 주지는 않을 것이다. 더 많은 기술 이전을 요구할 것이다. 대중국 투자에 대한 현명한 결정은 결국 기업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기업이 좋은 기술을 싸들고 줄줄이 중국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의 한국 기업에 대한 투자유치 정책, 즉 국내 투자환경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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