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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필리핀의 전략적 자율성으로 보는 경계 국가의 미-중 외교

베트남 / 필리핀 정혜영 건국대학교 중국연구원 연구교수 2025/01/31

자료인용안내

자료를 인용, 보도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 AIF 아세안 ”로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소 냉전 시대부터 탈냉전 시기에 이르기까지 베트남과 필리핀은 동남아시아에서 강대국들의 세력균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최근 들어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남중국해-대만-동중국해(오키나와)-한반도’를 잇는 미·중 간 경쟁 구도에서도 베트남과 필리핀의 영향력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이들 양국은 아세안(ASEAN)과 함께 다자구도 형성에 힘을 쏟는 동시에 강대국들 사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하고 유연한 외교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다음에서 이러한 외교 전략의 효용성과 한계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베트남·필리핀 역사의 특수성과 강대국 동학
역사적으로 중국은 베트남에 대하여 가장 오래,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온 강대국이다. 양국은 표면적으로 서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갈등과 협력의 미묘한 경계선 상에 있다. 국경 분쟁, 베트남 정부의 화교 박해문제, 베트남의 친소정책(Appeasement Policy to Russia) 및 캄보디아 침공에 대한 중국의 내재적 불만과 베트남의 자주독립 열망 갈등으로 분출된 ‘중-월 국경 전쟁(1979년)’ 등 양국 간 갈등의 역사는 오늘날 베트남의 중국에 대한 외교적 자세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냉전기 미-중 패권국 모두와 전쟁으로 충돌했던 베트남은 강대국으로부터 고립을 경험하게 되는데, 1986년 ‘도이모이(Doi Moi, 쇄신)’ 정책으로 문호를 열자 가장 먼저 국교 정상화(1991년)를 이끈 국가는 중국이었다. 베트남의 정치체제 운영과 지도부의 정치적 정당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 역시 중국이다.

한편, 미국과 베트남 관계는 195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퇴한 프랑스를 대신하여 남베트남에 수립된 월남공화국의 응오딘지엠(Ngô Ðình Diệm) 정권에 대폭적인 군사지원을 단행했는데, 지엠 정권이 제네바 협정에서 합의되어 있던 남북 총선거 시행을 거부하자 베트남의 남북 분단은 굳어진다. 1964년 8월, 미국의 린든 베인스 존슨(Lyndon Baines Johnson) 행정부는 통킹(Tonkin)만 사건1)을 계기로 베트남 전쟁에 본격 개입한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미국내 반전운동이 고조되었으며, 리처드 밀하우스 닉슨(Richard Milhous Nixon) 대통령은 미군철수를 결정하고 1975년 4월 베트남이 공산화되면서 양국의 국교는 단절되었다. 곧이어 미국은 대베트남 경제제재(Embargo)를 통해 베트남을 고립시켰다. 베트남 전쟁에서 승리한 하노이 정부는 국토를 통일하고 1978년 캄보디아를 침공하면서 세력을 키워 나갔지만, 미국, 중국, 일본, ASEAN과의 관계가 동시에 급격히 악화하면서 사실상 캄보디아에서 전면 철수한 1989년까지 약 11년간 국제사회와 단절된다. 

對베트남 봉쇄(1975년)로부터 19년이 지난 1994년 2월 미국은 경제제재를 해제하고 이듬해 베트남과의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데, 이때 일본은 미국의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대대적인 ODA 지원으로 베트남을 국제사회로 성공적으로 끌어낸다. 이후 미국은 베트남 최대의 수출시장으로 부상하면서 베트남 경제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해왔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세계 경제에 편입하고 강대국 간 균형 유지의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경제 발전 전략을 추진하며 중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필리핀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과 필리핀의 관계는 1896년 스페인 통치에 대항하는 필리핀 국민 저항을 미국이 지원하면서 시작된다. 1898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2,000만 달러(약 292억 원)의 패전비용을 요구하자, 스페인은 필리핀을 미국에 양도한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필리핀의 처리방안을 놓고 개입주의와 고립주의 간의 국익 논쟁이 극심했으며, 필리핀 내에서는 스페인 식민해방을 돕는다고 여겨져 왔던 미국이 지배를 시작하자 강한 저항운동이 일었다. 

1934년 3월 미국 의회는 필리핀 독립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2차 대전 시기인 1942년부터 1946년까지 필리핀이 일본에 점령당하자 결국 다시 개입하게 된다. 필리핀의 군사적·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미국은 필리핀 독립 직후인 1947년 필리핀과 99년간의 미군기지 임대 협정을 체결하고 물러난다. 이 협정은 오늘날 미-필 군사동맹 관계를 위한 3대 협정(MDT, VFA, EDCA)2)으로 발전한다. 미국은, 대체로 필리핀의 경제발전과 정치적 안정을 지원했으며, 동맹으로서 우방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필리핀 정치권과 국민은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인식을 지닌다.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강한 군사적 영향으로, 중국이 해양주권에 대한 공세적 행동을 강화할수록 필리핀과 미국의 군사안보협력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베트남과 중국이 지닌 갈등적 역사 및 '지배-복속'의 경험과는 달리, 필리핀과 중국의 역사기록은 해양경제 교역과 화교(華僑) 이주 역사에 기반을 둔다. 경제교류를 계기로 이루어진 화인(華人) 이주는 부족국가 형태였던 필리핀의 인구구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은 식민 지배 기간 동안 필리핀의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고 경제 활동을 강화하기 위하여 필리핀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푸젠성(福建省) 출신 중국인을 적극 활용했다. 

이후 필리핀에서 세력을 키운 화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지닌 차이나타운을 형성하며 뛰어난 경제 능력과 지식 기반을 바탕으로 필리핀 기반산업을 지배해 나간다. 필리핀의 국가 정체성 형성에도 깊은 영향3)을 미치며 성장 한 필리핀 화교는 1975년 이후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철저하게 필리핀 국적으로 흡수되고 있다. 

베트남 • 필리핀의 전략적 자율성 효과와 한계
베트남은 대륙과 해양이 연결되는 지정학적 정체성의 영향으로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판단과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강대국 간 세력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미-중 양국의 안보 지렛대를 활용하여 해양·국경 안보를 유지했으며, 정치적인 명분보다는 경제적 실리로 국익을 챙겼다. 미-중 양국과 갈등한 역사적 경험, 미-중 한 축에 완전한 편승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인해, 다자주의 외교 추구, 다자 경제체 적극 가입, 세계 경제 편입 가속화 방향에 외교의 방점을 둔다. 

베트남은 러시아 등 제3국에 대해서도 국제사회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채택하고 있어, 필리핀과 비교하여 전략적 자율공간이 넓으며 행동의 스펙트럼 확대가 가능한 외교적 상황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미-중 양국에 대해 ‘중립성과 독립성’ 외교원칙을 강조하면서 균형 혹은 편승 외교 전술 중 하나를 택해 장기간 지속하기 어려운 구조에 있다. 이에 베트남 외교 당국은 외교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베트남의 외교가 가벼운 ‘줄타기 외교’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미-중으로부터 시의적절한 국익을 잘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 기술력의 한계를 극복하며 자국 내 경제규제를 잘 작동시켜온 점 역시 베트남 외교의 자율공간 확보에 영향을 미친다.

베트남 지도부는 통치 정당성 강화를 위해 친중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위기 시에는 베트남 국민의 뿌리깊은 반중정서를 적절하게 이용해 단합된 국익수호 의지를 잘 노출하여 중국을 긴장시킨다. 또한, 엘리트 지도부는 강대국이 제 시하는 매력적 제의를 무조건 수용하지 않는 과거 성공사례를 통해, 외교 사안에 대한 자신만의 전략적 자율공간을확보해 나감으로써 자국 외교가 어느 강대국 한쪽으로 기우는 상황을 예방하고 있다. 

2020년 이후부터는 미-중 갈등 관계가 심화함에 따라, 양국 모두와 친밀한 경제외교를 통해서는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힘든 국제환경에 처하게 된다. 이에 적극적인 헤징(hedging, 위험분산) 전략을 채택하면서 강대국에 대한 균형외교를 심화하였는데, 중국과는 사회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정치 관계 심화, 미국과는 경제적 신뢰 관계를 크게 격상했다. 이러한 독립적인 외교 경향으로 인해 베트남은 자신과 함께할 제3의 우방을 더욱 필요로 할 것이며, 향후 다극체제형성에 더욱 힘을 쏟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베트남은 역내 분쟁 발생 시 미-중 어느 한 편에 편승하는 안보전략을 선택하기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미-중이 아닌 주변 제3국의 협력과 지원을 끌어내는 선택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필리핀은 미국 의존도를 탈피하고자, 과감한 두 차례의 외교 방향 전환을 시도한 바 있다. 하나는 1992년 미국철수 결정, 다른 하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Rodrigo Duterte) 대통령  시기의 친중 정책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의회가 미군철수 결정으로 얻은 결과는 중국과의 남중국해 분쟁 심화였으며,  결국 미국의 군사적 힘을 더욱 필요로 하는 상황으로 귀결되었다.4) 미국의 도움 없이 중국과의 해양 분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2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Permanent Court of Arbitration)에 제소해 승리했지만, 군사적 행동능력이 없는 판결로는 중국의 강경해진 행동을 변화시키기 어려웠다.5) 이후 들어선 두테르테 정부는 전향적인 친중 독립외교로 중국의 공세적 행동을 완화시키고, 중국으로부터 경제협력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해 미국에 공격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지만 두테르테 정부 시기 중국은 필리핀과 약속했던 240억 달러(약 35조 304억 원) 프로젝트 중 단지 10억 달러(약 1조 4,596억 원) 미만을 이행하는 데 그쳤으며, 미국과 필리핀의 합동 군사 훈련이 증가했기 때문에 남중국해 분쟁의 긴장감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필리핀 정부의 2차례 걸친 전략적 자율성 외교성과는 크지 못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미국은 2021년 인태전략에서 베트남과 싱가포르를 중요한 파트너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2022년 8월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 의장의 대만 방문과 대만 정책법안(Taiwan Policy Act of 2022) 발의 후, 필리핀에 대한 군사 전략적 활용도를 높였다. 2023년 8월 ‘한-미-일 ’삼각연대에 이어, 2024년 4월에는 ‘미-일-필’ 정상회담으로 3각 전략연대에 필리핀을 끌어들여 대중국 견제를 심화했다. 이처럼 미국이 동맹외교를 강화하면서 필리핀의 전략적 자율공간은 좁아지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략과 지정학 관계를 벗어나기 힘든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Ferdinand Bongbong Romualdez Marcos Jr.) 대통령 정부는 대미 편승 외교 전환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한다. 이를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인프라 투자6) 약속을 받아냈지만, 중국에서 오는 지정학적 안보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높아졌다. 필리핀은 베트남과는 달리 외교 방향이 가문정치와 대통령 권력 강화에 종종 활용되는데, 외교사안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정치인의 정치 갈등이슈와 연계되어온 점, 정치인의 잦은 당적 이동으로 외교 방향 전환이 쉽게 이루어지는 점은 필리핀의 일관된 외교전략 이행을 어렵게 만든다. △중국의 군사적 압력요인(남중국해 분쟁 심화), △미국의 경제적 매력 제시와 거래된 안보위험 노출, △필리핀 가문정치에 의한 외교 방향 결정7)이라는 3대 요인으로 인해 필리핀의 전략적 자율공간은 이전보다 좁아졌다. 이러한 점에서 필리핀은 오히려 미국에 편승한 안보 우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동남아 주변국에 해양안보 협력 동인을 제공하는 적극적 다자외교로 전략적 자율성을 전환하는 것이 중국에서 오는 안보위험을 헤징하고 미국과 협력하는 강대국 외교 효과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경계국가의 외교에 예민함이 있어야 하는 이유
니콜라스 존 스파이크먼(Nicholas J. Spykman, 1893~ 1943) 예일대학교 교수는 1942년 '세계정치에서의 미국 전략'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현실주의 지정학과 관계된 국제정치(international politics)의 힘은 무정부 상태에서도 국가 간 협력·적응·갈등이라는 세 가지 기본과정이 관찰된다’고 밝힌 바 있다. '고대에서 이어져 온 국제정치에서 패권은 다른 국가를 흡수하여 완전한 세계 단일 패권을 이룬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강대국 사이에 끼인 개별국가의 직접적 행동이 국제정치를 바꾸는 중요한 요인이 됨을 강조한다. 경계국가(border state)는 결국 자신이 지닌 부족한 힘으로 외교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게 되므로, 강대국과 상호작용하는 외교전략과 전술이 결국 자신의 안위를 결정하게 된다. 
 
중국과 해양영토 갈등 관계에 있는 소국, 필리핀과 베트남이 중국과 균형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을 활용하는 방식은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강대국은 자신에게 유리한 세력균형을 위해 외교적인 양면성을 지니게 되는데, 이 때문에 경계국가의 외교는 강대국의 외면적 행동보다는 의도를 더욱 민감하게 분석해야 한다. 베트남과 필리핀이라는 두 경계 국가의 공통된 특징은 미국, 중국 모두와 강화된 경제 및 정치외교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지니는 전략적 자율성 공간확보에 차별적인 결과를 보이는 이유는 강대국의 양면성에 대한 해석과 대응이 달랐다는 점이다.



* 각주
1) (편집자 주) 통킹만 사건(Gulf of Tonkin Incident, 베트남어: Sự kiện Vịnh Bắc Bộ,): 1964년 8월 2~4일 발생한 북베트남 어뢰정의 미국 구축함 공격 사건.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1971년 6월 뉴욕타임즈(New York Times)는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를 분석한 자료를 기반으로 한 기사를 통해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북베트남의 어뢰 공격과 관련 교전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공개하였다.
2) (편집자 주) 상호방위조약(MDT: Mutual Defense Treaty): 1951년 체결, 방위협력확대협정(EDCA: Enhanced Defense Cooperation Agreement) 2014년 체결, 방문군협정(VFA: Visiting Forces Agreement): 1998년 서명 
3) 아기날도(Emilio Aguinaldo), 호세 리살(Jose Rizal)과 같은 화교 후손들은 역사 안에서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식민지 정부에 대항하는 필리핀 독립운동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4) 미군 철수 후, 중국 회색지대 전략에 노출된 필리핀 경비대는 스카버러 암초(Scarborough Reef)에서 중국과 대치하다가 결국 철수한다. 이후 2012년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지원을 요청하지만 미국은 침묵했다. 미군 철수전 클라크 공군기지는 스카버러 암초 동쪽 300km에 위치했다.
5) Andrew S. Erickson, Martinson Ryan D. 2022. 『중국의 해양 그레이존 작전』 서울: 박영사.
6) PGI(Partnership for Global Infrastructure) 루손 경제회랑(Luzon Economic Corridor)은 필리핀 항구 물동량의 약 80%를 처리하며, 수빅만, 클라크, 마닐라, 바탕가스 간의 연결성을 지원하고, 철도, 항구현대화, 농업사업, 청정에너지 및 반도체 공급망과 그 배치 건설계획을 포함한다.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등 G 7개국 이 2022년에 발표한 글로벌 인프라 및 투자 파트너십(PGII) 자금으로 집행된다 (https://www.state.gov/u-s-relations-with-the-philippines/. accessed 14 September 2024).
7) 필리핀의 민주주의는 제도보다는 인물 중심이며, 대통령에 대한 권력집중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유력 정치인 개인의 이해관계가 외교관계에 반영될 소지를 높이는데, 여전히 막강한 세력을 지닌 두테르테 진영과의 연합으로 득표율에 성공한 봉봉 마르코스 대통령은 정치력 유지를 위해 두테르테 가문의 지지력을 필요로 한다. 연정으로 탄생한 마르코스 정권이 내부 정치 균형 유지에 실패한다면 필리핀 외교의 전략적 자율 공간은 이전보다 좁아 질 것이며, 외교가 강대국 이해관계 휘둘리거나 기존 외교 노선을 일관되게 유지해 나가기 힘들 것이다. 또한 필리핀의 해양분쟁과 안보정책 외교 방향이 국정분열 주제로 떠올라 사회적 혼돈과 논쟁이 거듭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2025년 필리핀 중간선거는 외교정책 안정성 및 국내 정치 연정 유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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