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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김정일과 베트남의 개혁·개방정책

베트남 정연호 시장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2

북한이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에 관심이 많다는 소식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0월 중순 평양을 방문한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을 만나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Doi Moi)’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또한 동남아 4개국 순방에 나선 김영일 북한 내각총리가 지난 26일부터 베트남을 방문하여 경제 현장을 둘러봤으며, 응웬 떤 중 총리와 회담을 갖고 ‘농업·과학·기술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 등에 서명했다고 한다. 


얼마 전 우리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만 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이 개혁·개방에 불쾌감을 표명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베트남의 개혁·개방에는 자신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도이모이’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은 시장경제원리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지난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할 때 그 기본 방침의 핵심으로 “시장경제원리를 적극 도입함으로써 경제 분권화를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경제 효율성을 강화하는 유일한 방법으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이라는 사실을 역사적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이 공산당 독재의 정치적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당 주도의 경제정책을 고수하였지만 시장경제원리를 바탕으로 하며 민간부문의 공존을 허용하는 경제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 일까? 


‘도이모이’ 정책의 특징 중에 하나는 외자유치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비록 1986년에 ‘도이모이’ 정책이 채택되었지만 외자의 유입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992년 이후까지는 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다.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베트남의 GDP 성장률은 연평균 5% 정도를 기록했지만 1992년 이후(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연평균 8.8%의 고성장을 구가하였다. 그 원인으로 ‘도이모이’ 정책에 소요되는 재원의 조달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베트남이 성공적인 외자 유치를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베트남군이 캄보디아에서 철수함으로써 프랑스·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후 세계은행·유엔개발계획 등의 국제기구가 중심이 된 베트남 지원국회의가 1993년 11월 개최되고, 1994년 2월 미국의 경제제재가 완전히 해제됨으로써 베트남에 대한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은 본격적으로 실행된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도 이 과정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을 ‘개혁·개방 정책’이라 부르는 이유는 1970년대 베트남이 공산화된 이후 유지해 오던 중앙계획경제 체제를 시장경제 체제를 통한 분권화로 전환하는 ‘개혁’이 ‘도이모이’의 한 축을 이루고, 재원 조달을 위해 캄보디아 주둔군을 철수하고 서방 사회에 손을 내미는 ‘개방’이 또 다른 한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베트남의 ‘도이모이’를 적극 벤치마킹하겠다고 언급했을 때는 ‘도이모이’의 핵심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겠다는 의지가 깔려 있어야 한다. 즉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경제에 ‘개혁’과 ‘개방’의 양 축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정치적 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경제개혁을 이룬다는 측면만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경제적 효율성을 강화하는 ‘개혁’ 조치는 필요하다. 외국자본이 들어왔을 때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보장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일례일 것이다. 


이에 소요되는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국제사회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난 10월 4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제2단계 조치’의 합의와 함께 올해 안에 핵 불능화 조치 및 핵 프로그램 신고 등의 수순을 밟기로 했다. 이에 상응하는 경제적 지원 및 미국, 일본 등 관련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약속되어 있다. ‘제2단계 조치’의 이행은 그 자체로도 북한에게 상당한 유인을 제공하지만 ‘개방’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며 국제사회와의 관계 개선을 향한 첫걸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지금이 더 없이 좋은 기회로 보인다. 어쩌면 이를 알기 때문에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을 벤치마킹하겠다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을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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