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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시아지역의 금융협력은 가능한가

동남아시아 일반 김필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2009/09/12

얼마 전 한-일 양국 정상회동이 있었다. 이 만남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에서부터 양국 간 투자 활성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 중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최근 국제금융위기와 함께 주요 이슈로 재부상하고 있는 아시아권의 금융협력과 한-일 양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였다.

 

아시아권의 금융협력이 관련국 정책당국자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시기는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지역의 경제를 휩쓸고 지나간 금융위기는 역내 금융협력 논의를 본격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금융위기로 하루아침에 경제가 반 토막 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의 위기대처 능력에 크게 실망했고, 역내국들의 긴밀한 협력을 통한 자체적인 금융위기 예방 및 대처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정책적 노력들이 나타났는데,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 ASEAN+3 이니셔티브이다. ASEAN과 한-중-일 3국의 지도자들은 1997년 12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 모임을 갖고 21세기 아시아의 발전전략과 역내국 간 경제협력 체제 구축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ASEAN+3는 매년 빠짐없이 정상회담을 열고 있으며, 이와 별도로 재무장관들도 실무차원에서 매년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 ASEAN+3 이니셔티브에서 강조된 것은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경제동향 점검 및 정책대화(Economic Review and Policy Dialogue, ERPD), 그리고 역내 통화 기반의 채권시장 활성화 등 세 가지로서 이들은 서로 상호보완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우선 2000년 합의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당사국 간 통화스왑 협정 방식으로 유사시 유동성을 지원받을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고 있는데, 2007년 7월을 기준으로 체결된 역내 유동성 지원 규모가 약 83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ERPD도 같은 해 시작되었는데, 역내 자본흐름 감시 및 금융시스템 강화, 국제금융구조 개혁, 그리고 역내 자체적 위기관리 능력 제고를 바탕으로 한 금융위기의 사전적 감지 및 방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역내 채권시장 활성화는 단기 외화자본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 해소와 높은 역내 저축률을 이용한 역내 투자 제고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그 성과는 매우 실망스럽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ASEAN+3 이니셔티브가 지닌 구조적인 한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치앙마이 이니셔티브의 경우, 그간 급성장한 아시아지역의 경제규모에 비해 유동성 지원 액수가 지나치게 작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지원액의 90%가량은 수혜국이 IMF의 까다로운 여러 가지 조건들을 수용할 때에 한해 사용할 수 있게 하여 IMF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또한 지원형태가 일괄적이지 않고 상호협정 형식으로 되어 있어 유동성 지원이 적시에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ERPD는 금융위기의 사전적 예방에 필수적인 거시 및 금융 관련 자국 정보의 공유에 관련국들이 소극적인 데다가 공유된 정보조차도 정확하게 분석해 낼 전문인력이 크게 부족하여 효과적인 정책제안의 도출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설사 정책제안을 도출하더라도 이를 당사국에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가 없기 때문에 정책의 실효성이 거의 없다. 역내 채권시장 활성화의 경우에도 채권공급 측면에서의 비효율성이나 시장에서 차지하는 국공채 등의 압도적 비중으로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유동성 지원은 당사국 간 합의에 따라 얼마든지 규모를 늘릴 수 있고 절차를 간소화할 수 있으며, 역내 채권시장 육성이나 ERPD도 관련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진다면 충분히 활성화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려면 금융협력을 위한 정책당국자들의 정치적 의지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아시아의 금융협력에 있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제대로 된 금융협력을 향한 역내국들의 정치적 의지의 부재라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최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위기는 과거 외환위기가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아시아지역의 금융협력을 위한 모멘텀을 제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국제 금융구조의 재편 요구와 더불어 아시아권 금융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그간 질질 끌어왔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금융협력이 논의된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과거 일본이 제안했던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아시아통화기금의 창설은 국제금융질서 재편의 시대적 흐름에 부합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역내국 간 다양한 정치적 입장 차이의 효율적 조율과 금융협력을 위한 체계적인 정책적 접근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양국 정상의 회동을 계기로 국제질서 변화추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향후 새롭게 재편될 국제 금융질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의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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