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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베트남의 파업양상과 전망

베트남 채수홍 전북대학교 부교수 2012/01/19

지난 2011년은 베트남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암시한 중요한 해로 기억할 만하다. 양적으로 베트남 역사상 가장 많은 파업 수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여러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베트남의 공장들은 3-4회의 임금인상을 통하여 인건비가 40-50퍼센트나 상승하는 현상을 지켜보아야 했다. 이에 따라 경영자들의 불평과 반발이 거셌다. 그 결과 파업이 일어나면 노동자가 반드시 이긴다는 “파업불패” 공식이 깨지는 사업장도 생겨났다. 일부 외국계 회사에서 철수를 각오하면서까지 임금인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면서 노동자들이 백기를 드는 이례적인 현상까지 목격되었다.

 

여러 차례에 걸친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도 지난해가 그리 행복하진 않긴 마찬가지였다. 가파른 물가인상으로 임금인상효과가 반감되었기 때문이다. 임금이 오르면 월세와 식비가 오르니 살기 어렵긴 마찬가지라는 불만이 팽배했다. 4인 가구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려면 1천-1천 2백만 동(500-600 달러)은 필요한데 노동자 부부가 함께 일해도 평균 8백만 동 정도 밖에 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두 명 가지려면 부부 가운데 한명이 월급을 많이 받는 숙련공이거나 현장관리자여야 된다. 결국 일반노동자 가구를 아이를 하나 갖기도 버거운 상황인 것이다.

 

경영자와 노동자가 모두 곤혹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파업의 조직과 진행과정이다. 베트남의 파업은 모두 노조를 거치지 않고 행해지는 ‘살쾡이 파업(wildcat strike)'이다. 살쾡이 파업의 특징은 주동자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요구도 명확하지 않아 협상이 즉흥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는데 있다. 실제로는 노동자는 주변의 임금이나 파업 동향에 대한 정보를 잘 획득하고 있으며, 주동자가 누군지 잘 알고 있으며, 파업 전에 요구사항을 대자보 등을 통해 흘리고 있다.

 

하지만 주동자를 노출하여 경영진으로부터 보복을 당하거나 정보기관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매우 은밀하게 파업을 진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은 파업의 기미를 알아도 협상대상이나 요구조건이 명확하지 않아 결정을 미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작업을 거부하는 노동자를 보고 당황하게 된다. 지난 해 불길처럼 번졌던 파업은 경영진과 노동자 모두에게 예측가능성이 적은 이런 식의 파업 전개과정이 효율적이지 않고 소모적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심어주었다.

 

경영자와 노동자가 파업과정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각 사업장의 노조와 상급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파업절차를 규정한 노동법이 현실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노조가 자신의 불만사항을 회사에 전달해주는 창구로는 생각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회사 편이라고 믿는다. 노동자가 파업을 할 때 앞장 서주지 않고 중재자 역할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복잡한 법 규정에 따라 파업을 진행할 경우 파업이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살쾡이 파업에 대해 노사 양측이 만족을 못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앞으로 의류, 신발, 섬유 등 노동집약적 산업을 중심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 있는 베트남이 평화롭고 효율적인 산업관계를 정착시키려면 정치경제적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 베트남의 파업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노동집약적 기업이 파업에 대처하기 힘든 구조적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의류, 섬유, 신발의 큰 손인 다국적 기업들이 베트남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들의 이윤을 최대한 짜내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해 의류업계의 큰 손이 타깃(Target)이 납품가를 15퍼센트 가량이나 낮추면서 베트남 의류공장의 원성을 산 바 있다. 사실은 이들이 베트남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나 인권단체를 의식하고 있는 이들은 오히려 상시적인 점검(compliance)을 통하여 현지공장에서 노동자에게 인간적인 처우를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대부분의 (특히 하청을 받는) 노동집약적 공장은 노동자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우하기가 힘든 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바이어, 원청회사, 하청회사가 서로 이윤을 적절하게 보장해주려는 상생의식이 없는 한 노동자의 처우보장이 힘들어지고 파업도 계속될 것이다.

 

베트남 회사의 다수를 차지하는 외국계공장 내부의 정치과정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외국인 경영자와 베트남인 노동자는 사회문화적으로 거리감이 상당하다. 이해관계의 차이와 상이한 언어 등으로 인하여 서로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양자의 대화를 중재하는 집단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이를 위해 노조간부, 사무실 직원, 현장관리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이들이 노동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외자기업은 현지인끼리 뭉치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 외국인 경영진이 직접 현지노동자를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지노동자가 외국인 경영진에게 파업을 통해 의사전달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정치경제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면 2012년에도 대립적인 노사관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2012년은 작년보다 파업이 일시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기가 적어도 전반기까지는 회복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공장의 생산량과 인력수요가 감소하면 노동자도 처우개선보다 일자리를 먼저 걱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베트남 정부가 물가를 잡지 못할 경우 문제가 복잡해질 것이다. 노동자는 임금인상과 일자리 보존을 동시에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윤은 줄어드는데 노동자의 임금인상요구에 대처할 수단이 마땅치 않을 것이다. 이로 인해 폭력적인 파업이나 폐업 등 극단적인 수단이 동원될 가능성도 있다.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파업이 양적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노사관계의 질적 변화를 기대하긴 아직 이른 것 같다. 지난 해 파업은 베트남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몇 년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관계를 예측가능하게 정립할 수 있는 제도적인 준비는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2012년은 베트남의 노사관계 뿐 아니라 경제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중요한 한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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