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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전문가오피니언] 인도와 캐나다의 갈등: 칼리스탄(Khalistan)의 긴 그림자

인도 고홍근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명예교수 2024/02/05

인도와 캐나다의 양자관계가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1950년대 이후의 인도와 캐나다 관계를 평가한다면 ‘중간세력(Middle Power)’ 사이의 ‘제한된 협력관계(Limited Cooperation)’라고 볼 수 있다. 국력을 기준으로 볼 때 두 국가는 자신이 속한 지역정치체계 내에서만 영향력을 발휘하는 중간세력이다. 또 지정학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적극적인 협조나 우발적인 분쟁의 여지가 적으며, 상품교역에 있어서도 2022년 캐나다는 인도의 교역량의 0.7%, 순위로는 35번째이며1) 인도는 캐나다의 10번째 교역대상국이지만 그 비중은 0.9%였다.2) 바꾸어 말한다면, 인도와 캐나다는 서로에게 ‘있어도 별 부담이 안 되고, 없어도 크게 아쉽지 않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2023년 6월, 이 제한된 협력관계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 출신 캐나다 시민인 시크교(Sikhism) 지도자가 인도 정부의 공작 또는 지원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강력한 의혹이 제기된 것이었다. 캐나다 내에서 인도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같은 해 9월 뉴델리에서 열린 G20 회의에서 인도와 캐나다 수상은 공식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교역 확대라는 명목으로 겨우 비공식회담이 열렸지만, 이 자리에서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캐나다 총리는 ‘시크교 지도자 살해사건에 대한 인도 정부의 개입’ 문제를 제기했고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칼리스탄(Khalistan) 운동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3) 현안(懸案) 자체가 매우 적을 것처럼 평가되었던 양국 간의 관계가 공식적이고 노골적인 긴장 상태로 전환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직접적인 원인으로 표출된 것은 시크교 지도자의 살해였지만, 그 배경에는 일부 시크교도(Sikhs; 이하 시크)의 ‘칼리스탄 운동’이 있었다.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시크교와 칼리스탄 운동에 대해 설명한 후에 칼리스탄 운동에서 비롯된 인도와 캐나다의 갈등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었던 시크교
15세기 말 인도아대륙의 서북부 펀잡(Punjab) 지역에서 탄생한 시크교는 유일신(唯一神)을 신봉하고 윤회사상에 바탕을 둔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평등과 포용을 강조하고, 인도에서 기원한 종교로서는 드물게 출가(出家)보다는 적극적이고 성실한 세속생활을 권유한다. 또 역사성을 획득한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절제, 박애, 자선을 강조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교리를 현실 세계에서 운용하는 시크들의 모습은 상당히 호전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키르판(Kirpan)이라고 불리는 단검을 지니고 다니기도 하고 장발(長髮)과 터번(Turban) 등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연히 드러내는 외양(外樣)을 하고 있다. 그 교리와 현실 사이의 괴리에서 ‘시크교의 진정한 얼굴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이 질문의 답은 시크교의 역사에서 찾아야 한다. 

시크교의 성장은 무굴(Mughal) 제국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초기 단계에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했었으나 1606년 5대 교주(Guru; 구루)4) 아르준 데브(Arjun Dev)가 무굴제국의 황위계승 분쟁에 말려들어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것이 시크교가 준(準)군사 집단화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후, 시크교와 무굴제국은 화해와 대립을 반복하는 아슬아슬한 관계를 이어갔지만, 9대 교주 떼그 바하두르(Tegh Bahadur)가 이슬람(Islam)교의 광신도였던 오랑제브(Aurangzeb) 황제에 의해 개종을 강요당하며 처형되었다. 

뒤를 이은 10대 교주 고빈드 씽(Govind Singh)은 오늘날의 시크교를 완성시킨 인물이었다. 그는 시크교의 성경인 ‘구루 그랑트 사히브(Guru Granth Sahib)’를 완성하여 앞으로는 이 책이 교주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전통과 오늘날 시크교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외양을 규정하였으며, 칼사(Khalsa)5)라는 새로운 조직을 창설했다. 칼사는 ‘순수한 동일체’라는 뜻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시크교도라면 누구라도 가입할 수 있다. 칼사에 가입한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신에게 바치며 정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하여서라도 투쟁한다는 의미이다. 고빈드 씽은 무굴제국과의 효율적인 투쟁을 위해 엘리트(Elite) 전사(戰士) 집단을 창설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칼사는 18세기 시크 제국(Sikh Empire)6)의 군사적 기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칼리스탄 운동의 정신적 배경이자 시크들이 호전적이고 때로는 광신적으로 비치는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시크교의 두 얼굴은 역사의 산물이다. 즉, 시크교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칼을 들었기 때문이다. 칼을 사용함으로써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복수를 위한 칼보다는 영(靈)적인 무기가 더 낫다는 자신의 믿음을 전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역사 때문에 현재의 칼리스탄 운동가들 중의 일부가 폭력적 투쟁을 선택하는 것이다.

칼리스탄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칼리스탄의 의미는 ‘칼사의 땅’ 또는 ‘순수한 땅’이다. 이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30년대부터 였다. 1947년 영국령인도제국(British Empire of India)이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에도 일부 소수의 시크들은 칼리스탄 독립국가의 창건을 주장했지만, 힌두와 무슬림(Muslim)에 비해 너무 적은 인구 그리고 결집력과 지도력의 결핍, 또 시크가 집중하여 살고 있는 펀잡 지방이 바다와 너무 떨어져 있다는 사실들이 이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고 그에 따라 시크들은 인도 공화국의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시크들 사이에는 불만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인도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비해서 돌아오는 보상이 너무 작다는, 그리고 자신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이 그 불만의 근본적인 배경이었다. 이것이 노골화된 것이 1981년 3월 찬디가르(Chandhighar)의 54차 시크 교육 회의(Sikh Education Conference)였다. 이 회의에서 ‘시크는 하나의 민족(Sikh Quam)’이므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와 같은 지위를 갖도록 국제연합(UN)에 청원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되었다.7) 비록 회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지만, 펀잡 주 전체 그리고 펀잡어(Punjabi)를 사용하는 주변 주들의 영토 일부분을 합쳐 시크만의 국가, 즉 칼리스탄을 건국하여 인도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 선언이 즉각적으로 대다수 시크들의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은 아니었다. 절대다수의 시크들은 심정적으로는 이 선언에 공감했지만 그 현실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칼리스탄 분리주의자들은 시위와 선동을 계속했고,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 펀잡 주의 공업 침체, 농업생산 부진과 청년 실업이 분리주의자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다.8) 그리고 이 긴장 상태가 정점에 다다르는 사건인 동시에 인도의 현대사를 바꾼 사건이 1984년 발생했다.

아! 황금사원(Golden Temple)9)
펀잡의 암릿싸르(Amritsar)에 위치한 황금사원은 시크들에게 가장 신성한 장소이다. 1981년 중반부터 약 200명의 분리주의자들은 정부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서 이 사원을 피난처로 삼기 시작했고 이어서 동조자들과 퇴역한 군인들 중 일부가 합류했다. 이들 중에는 장군과 영관(領官)급 장교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1984년 6월 당시 황금사원 내의 분리주의자의 숫자는 2,000명 미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10) 인도 정부는 지금도 이 분리주의자들이 로켓발사기, 기관총 등으로 무장했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변변한 무장 상태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다.11) 당시 총리인 인디라 간디(Indira Gandhi)의 승인에 따라 1984년 6월 5일12) 황금사원을 비롯하여 펀잡 주의 38개 시크사원에 정부군이 투입되었다.13) 블루스타 작전(Operation Bluestar)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황금사원 진압 작전에 정부군은 탱크, 장갑차 심지어 헬리콥터까지 동원하였고, 그 결과 사원 내의 주요 종교적 건축물들이 폐허화되는 일이 벌어졌다. 5일간 계속된 진압 작전에서 발생한 사망자의 수에 대해 인도 정부는 정부군, 단순 순례자를 포함하여 모두 475명이라고 주장하지만14) 시민단체들은 분리주의자 200명, 순례자 5,000명이라고 주장한다.15)

분리주의자들을 이 기회에 일소(一掃)하겠다는 인디라 간디의 의도와는 달리, 이 사건의 여파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다. 많은 시크들은 황금사원에 대한 공격이 자신의 신앙에 대한 공격이라고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가장 온건한 시크조차도 강경파로 입장을 바꾸었고 황금사원 내에서 사망한 사람들은 순교자와 동의어가 되었다. 또, 당시 인도 육군의 최정예부대였던 시크여단(Sikh Regiment)의 장교와 병사들 수천 명이 탈영하여 무장투쟁에 참여했으며 공무원이었던 시크들은 사직하였다.

인도의 현대정치사를 바꾼 사건은 4개월 후인 10월 31일에 발생했다. 인디라 간디 수상이 시크교도인 경호원 2명의 총격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블루 스타 작전에 대한 보복이었다. 다음 날인 11월 1일부터 4일간 힌두(Hindu)들을 중심으로 한 폭도들이 시크들을 공격했고, 1947년 독립 이래 최악의 종교폭동으로 기록된 이 반(反) 시크폭동(Anti Sikh Riot)에서 델리(Delhi) 지역에서만 약 3,000명의 시크들이 살해되었다.16) 인도 내의 모든 시크들에게는 공포에 가득 찬 악몽이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펀잡 지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분리주의자들은 무장세력화하였고 무차별적인 폭탄테러, 관공서 습격, 힌두사원 공격, 납치 등을 자행하였다. 사실상의 반란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인도 정부는 15만 명에서 50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고, 오랜 기간 펀잡은 인도인마저도 기피하는 매우 위험한 장소가 되었다.17) 이 일련의 사건을 거치는 동안 시크들에게서는 그 적극적이고 당당했던 모습이 사라져갔고, 스스로를 인도의 2등 시민으로 비하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1990년대 이후 시크들의 해외 이주가 급속히 증대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캐나다의 시크들과 칼리스탄 운동
인도인들의 해외 이주는 19세기 말 본격화되었고, 이것은 영국의 영토 확장과 현대적 교통수단의 발달에 힘입은 바가 컸다. 그 결과, 2023년 현재 인도는 210개국에 약 3,200만 명의,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해외 이주자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18) 시크들의 해외이주도 19세기 말에 시작되었지만, 캐나다에는 1904년 248명이 브리티시 컬럼비아(British Columbia)에 도착하여 주로 농업과 임업 노동자로 일했다.19) 지난 120여 년 동안 캐나다의 시크 인구는 증감을 거듭하다가 현재는 캐나다 전체 인구의 2.1%인 약 80만 명에 이르러 네 번째로 큰 종교집단이 되었고,20) 인구 비율로만 따지면 인도에 이어 시크의 비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이다. 

1947년 시크를 비롯한 남아시아 출신 캐나다인들이 투표권과 시민권을 갖게 되자 시크들은 그 특유의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1950년 최초로 시크 시의원을 탄생시켰고, 2023년 기준 총 18명의 시크 연방의원이 배출되었다. 시크들보다 그 인구가 약간 더 많은 힌두 출신의 연방의원이 단 1명이라는 점과 비교해 보면 시크들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시크들의 이와 같은 정치적 성장은 첫째, 온타리오(Ontario), 브리티시 컬럼비아 등의 일정 지역에 밀집하여 있으므로 지지집단 형성이 유리하다는 점, 둘째, 캐나다 각지의 시크사원이 선거 조직과 후원금 모금을 용이하게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캐나다 시크의 다수를 점하고 있는 자뜨(Jaat) 카스트의 강력한 결속력 등에 힘입은 바 크다.21) 경제적으로도 그들은 모텔(Motel), 식당, 주유소, 목재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인도 출신 이민자들의 평균연봉 3만 7,050달러(한화 약 4,870만 원)보다 높은 연 6만 1,488달러(한화 약 8,810만 원)의 소득을 얻고 있다.22) 

칼리스탄 운동이 활성화되던 1980년대 초부터 일부 캐나다 시크들은 이 운동의 자금을 지원하고 있었고, 황금사원 사건과 반(反) 시크교도 폭동으로 칼리스탄에 대해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시크교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도 외교 대표부 앞에서는 시위가 벌어졌고 인도 국기가 불태워지는 일도 있었다. 캐나다 시크들의 칼리스탄 운동이 세계적 관심을 끈 것은 1985년 탑승자 329명 전원이 사망한 캐나다 발 인도 행 에어 인디아(Air India) 182편 폭발사건이었다. 캐나다 정부의 조사로 그 배후가 캐나다 시크임이 밝혀졌으나 실질적으로 형 집행판결을 받은 용의자는 1명뿐이었다.23)

1990년대 중반 이후 펀잡에서 칼리스탄 운동이 그 세력을 잃은 이후에도 캐나다는 칼리스탄 운동의 온상(溫床)이 되었다. 2012년, 인도 외무장관이 인도를 방문한 캐나다 수상 스테픈 하퍼(Stephen Harper)에게 ‘반(反) 인도적인 레토릭이 캐나다에서 부활’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었다.24) 하지만, 캐나다의 시크들 중 칼리스탄이 구현되리라고 신봉하거나 적극적으로 그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보아야 한다. 비록 그들이 인도에서 시크교가 처한 현실에 분노하고 칼리스탄의 이상을 함께 한다고 해도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인도 정부는 암살 배후로 의심을 받는가? 
인도와 캐나다의 현재 긴장 관계의 직접적 계기가 된 2023년 6월 일어난 칼리스탄 운동가 하르딥 싱 니자르(Hardeep Singh Nijjar; 이하 니자르)25)의 암살사건이다. 그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써리(Surrey)의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시크사원 앞에서 두 명의 복면 괴한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그의 암살은 당연히 시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인도 외교대표부 주위에서 반인도시위가 벌어졌다. 캐나다 정부와 시크들이 암살의 배후로 인도 정부를 지목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도 정부에게 있어서 칼리스탄은 심각한 안보문제이다. 국토의 분할을 허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1984년부터 10여 년 동안 지속된 유혈사태는 악몽이었다. 그 당시 펀잡 지역은 전쟁터와 다름이 없었으며 수도 델리(Delhi)를 비롯한 중북부 인도는 테러의 공포에 떨었다. 이념과 성격에 관계 없이 역대 모든 인도 정부는 수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칼리스탄 운동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동의한다. 따라서 ‘니자르의 죽음에서 이익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라는 가장 단순한 질문에 ‘인도 정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둘째, 현재 인도의 집권당인 인도인민당(BJP)은 힌두뜨바(Hinduttva; 힌두민족)를 가장 중요한 대의(大義)로 삼는 정당이다. 즉, 인도를 ‘힌두의 나라’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다. 그들에게 칼리스탄 운동은 정치적 반역일 뿐만 아니라 종파적 모독도 되는 것이므로 마땅히 응징되어야 한다는 것이 인도인민당의 생각일 것이다. 또 모디 총리도 2002년 구자라트(Gujarat)주 수상일 당시 힌두들의 무슬림 학살을 방관했었던 인물이므로 인도 정부가 탈법적· 비도덕적 수단을 사용 또는 허용했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셋째, 니자르는 2023년 비슷한 시기에 살해된 세 번째의 칼리스탄 운동가이다. 5월에는 파키스탄(Pakistan) 라호르(Lahore)에서 1명이 총격·살해되었고 6월에는 다른 1명이 영국 런던(London)에서 독살되었다.26) 또 11월에는 미국 연방 검찰이 칼리스탄 운동가에 대한 암살 모의 혐의로 인도인 1명을 기소했다.27) 과연 이 대륙을 넘나드는 죽음과 음모들이 우연의 일치였었고 일개 민간조직이 실행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넷째, 암살 1개월 전에 니자르는 캐나다 정보 기관원에게 인도 정부의 암살위협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28) 물론 이것을 첩보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주 캐나다 미국대사가 니자르의 암살에 인도 정부가 관여되었다는 정보를 파이브 아이즈(Five Eyes)29)가 공유했다고 인정했다.30) 이것은 인도 정부 개입설의 신빙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인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미국의 정책을 감안한다면, 구태여 인도를 자극하면서까지 불확실한 첩보를 공개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니자르 암살사건에 인도 정부가 개입되어 있다는 정황은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찾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12월 28일 ‘범인 체포가 임박하였다.’31) 는 보도가 있었지만, 만약 체포에 성공하여 자백을 받아낸다고 해도 인도 정부가 배후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세계의 많은 암살 사건들처럼 ‘서로 자신이 믿는 것만을 주장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지루한 대치’가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다.

‘문화적 다원주의’ vs. ‘테러리스트들의 안전한 피난처’
캐나다 트뤼도 총리는 2023년 9월 18일 하원 연설에서 ‘캐나다 영토에서 캐나다 시민을 외국정부가 개입하여 살해하는 것은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민주적인 사회들이 스스로 준수하는 근본적인 원칙에 어긋난다.’32) 라고 니자르 암살에 대한 캐나다의 입장을 요약했다. 주권국가로서 당연한 주장이지만,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민주적인 사회들(free, open and democratic societies)’이라는 문구다. 얼핏 이 단어들이 민주국가의 일반적인 규범처럼 보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민감한 의미를 갖는다. 바로 ‘캐나다 문화적 다원주의 법(Canadian Multiculturalism Act)’ 때문이다. 국토의 크기에 비해 인구가 적은 국가이므로 캐나다는 관대한 이민자 수용정책을 지속해 왔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계 이민자들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1970년대에는 아시아계가 급증함에 따라 소위 ‘가시(可視)적 소수자들(Visible Minorities)’33) 이 사회의 일정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캐나다는 1985년 세계 최초로 문화적 다원주의를 법률로 보장하였다. ‘다문화 정책은 시민들이 공식적인 박해의 두려움 없이 그들의 종교를 실천하고 그 정체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 누구라도 어떠한 두려움 없이, 캐나다인들이 다른 문화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어진다. 그러므로, 이 정책은 인종 간의 상호 존중과 개인적인 신앙의 수용을 강조한다’34) 따라서 칼리스탄 운동도 그것이 폭력 등의 불법행위를 수반하지 않는 이상, 캐나다에서는 종교적 활동 또는 정치적 의사표명으로 간주될 뿐이다. 따라서 캐나다 정부는 니자르 암살이 단순한 살인사건을 넘어서 다인종 사회를 유지하는 근간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고, 외교 분쟁을 무릅쓰는 강경책을 선택한 것이다.35) 

캐나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인도 정부는 즉각 ‘어처구니없고 의도적인’ 모함이라고 반발하면서 캐나다의 인도 외교관 추방에 맞서 캐나다 외교관을 추방했고 약 1개월 동안 캐나다 시민의 비자 발급을 중단하기도 했었다. 소위 ‘상응하는 보복(tit-for-tat response)’으로 맞선 것이다. 더 나가, 인도 외무성 대변인은 캐나다는 ‘테러리스트들의 안전한 피난처(a safe haven for terrorists)’라고 규정하면서 국제적 평판을 우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롱했다.36)

2014년 집권 이래, 모디 총리는 자신에게 장애가 되는 세력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전술을 사용해왔다.37)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자신의 최대 정적인 국민회의당(National Congress)의 라훌 간디(Rahul Gandhi)에 대하여 논란의 여지가 많은 명예훼손 혐의로 하원의원 자격을 박탈하고 2024년 총선거에 출마조차 불확실하게 만든 일을 들 수 있다.38) 니자르를 비롯한 칼리스탄 운동가들의 잇단 암살과 그 시도들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인도가 암살사건의 배후라는 추정을 전제로 한다면,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지나쳤고, 캐나다의 공개적인 반발을 예측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고 보는 의견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21세기는 인도의 세기’
인도와 캐나다의 긴장상태가 언제 해소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양국은 이미 외교관 추방, 비자 발급 제한, 독설과 상호비난 등의 비교적 낮은 수준의 외교적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킬 의지는 양측 모두에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니자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보다는 주장과 반박이 거듭되다가, 특히 아시아-태평양 전략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관여로 서로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무마될 가능성이 크다. 그 기간은 짧으면 1년, 길어도 2년을 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국제분쟁이 이런 식으로 해결되어 왔다. 

인도와 캐나다의 외교적 미래보다 우리가 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양국 국민들의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이다. 먼저, 이번 사태가 인도인들의 캐나다에 대한 인식에는 어떤 변화를 주었을까? 원래 인도인들에게 캐나다는 매력적인 나라였다. 일반적으로 많은 인도인들은 강력한 경제, 높은 생활 수준, 고품질의 교육과 보건체계뿐만 아니라 우호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라는 평판 때문에 캐나다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이에 따라 2023년 인도인의 캐나다 이민자는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될 정도로 급격히 증가했으며39) 80만 명의 외국인 유학생 중 40%가 인도 학생들이다.40) 그러나 양국 관계가 악화된 2023년 7월에서 10월 사이 유학 신청자의 수가 8만 6,562명으로 2022년 같은 기간 14만 5,881명에서 40% 감소했다.41) 이것은 캐나다의 높은 물가와 치열 한 취업 경쟁의 영향도 있겠지만, 최근의 갈등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42) 캐나다인의 인도에 대한 인식은 10점 만점에 5.7점이었다. 어중간한 점수였지만 인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기회의 땅으로 생각하는 여론이 높았다. 이번 사태에 대한 조사에서는 캐나다인의 약 4분의 3이 트뤼도 총리의 주장을 ‘신뢰한다’ 또는 ‘어느 정도 신뢰한다’고 응답했다.43) 절대다수에 가까운 캐나다인들이 인도 정부가 주권을 침해했거나 그것에 개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국 국민의 인식을 회복하는 데 외교적 갈등의 해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세계 각국의 인도인 이민자들 사이의 갈등 증대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인도 이민자는 210개국에 3,200만 명에 이른다. 100만 명 이상의 국가는 10개국, 50만 명 이상의 국가도 15개국이다. 여기서 총칭하여 인도인이라고 부르지만, 힌두, 무슬림, 시크 등 인도의 다양한 종교의 신도들이 혼재되어 있다. 캐나다의 경우에도 시크 36%, 힌두 32%, 무슬림 11%로 구성되어 있다.44) 인도의 고질적인 병폐인 종파갈등의 잠재력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인도 국내의 종파갈등이 해외 이민자 사회에까지 수출되는 것이다. 니자르 사건처럼 특정 종교를 목표로 삼는 것 같은 인상을 인도 정부가 계속 준다면 인도인 이민자 사회도 걷잡을 수 없는 대립 상태에 빠지게 될 우려가 크다. 

2023년 1월 모디 총리는 ‘21세기를 인도의 세기로 만들자’고 말했다.45) 2023년에 인도는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되었고 인류 최초로 달의 남극에 우주선을 착륙시켰으며 세계 5위의 국내총생산(GDP)국의 지위도 지켰다. 모 디 총리의 포부가 현실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주는 성과였다. 인도가 21세기를 이끄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지만, 기왕이면 많은 국가들로부터 ‘세기를 이끄는 동반자 국가’로도 인식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 본다. 




* 각주
1) 원고의 양의 제한 때문에 인터넷 기사의 주소는 참고자료에만 표기하기로 한다. Sharma, Harikishan. 2023.09.22. India-Canada ties in numbers: 5 key indicators on immigration, trade and more. 
2) Statics Canada. 2023.05.09. Canadian international merchandise trade: Annual review 2022. 
3) Tasker, John Paul. CBCNews. 2023.09.18. Trudeau accuses India's government of involvement in killing of Canadian Sikh leader. 
4) 구루는 원래 ‘정신적 스승’, ‘종교적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는 이해를 돕기 위해 교주로 번역했다.
5) 칼사는 ‘순수함’의 뜻의 아랍어 ‘칼리스(Khalis)’에서 유래했다. 
6) 1799년 무갈 제국의 쇠퇴를 배경으로 란지뜨 싱(Ranjit Singh)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전성기에는 뻔잡 지역 대부분을 지배하는 느슨한 형태의 제국을 유지했다. 그러나 란지뜨 싱의 사후 급속도로 쇠퇴하여 1848년 영국에 의해 해체되었다. 
7) Singh, I.P. Times of India. 2014.09.26. 'Sikh Qaum' protagonist, who took up the issue of management of gurdwaras by Sikhs in Pakistan. 
8) The Conversation. 2023.09.20. The fraught history of India and the Khalistan movement. 
9) 황금사원이라는 명칭은 도금된 돔(Dome) 지붕 때문에 붙여진 속칭이며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정식명칭은 ‘하르만디르 사히브(Harimandir Sahib; 신의 집)’이다.
10) 이 수치는 인도정부의 백서를 바탕으로 추정한 것이다. 백서에 따르면 분리주의자 사망자 200명, 부상자(분리주의자와 순례자) 86명, 피체포자(분리주의자와 순례자) 1,592명이다. 순례자가 포함된 이 발표를 모두 따른다고 해도 채 2,000명이 되지 않는다. SikhMuseum.com. 1984 Indian Army Attack on the Golden Temple Complex. 
11) 강경파들이 가진 무기는 스턴건(Stengun)과 AK 47 소총 수십정과 로켓발사기 2대, 각각 12개의 탄창을 가진 경기관총 4대뿐이었다고 한다. Jaijee, Inderjit Singh, 1999. Politics of Genocide: Punjab, 1984–1998. Ajanta Publications;   New Delhi. p. 55-7.
12) 황금사원에서 총격전이 시작된 것은 6월 1일부터였다.
13)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은, 6월 3일은 5대 교주 아르준 데브가 무갈제국의 고문에 의해 죽은 기념일이었으므로 많은 시크교도들이 황금사원 뿐만 아니라 각지의 시크사원들을 참배하거나 머물면서 교주의 죽음을 애도하는 전통이 있다. 정부군이 하필이면 일반신도들이 많이 모이는 기간에 군사작전을 감행했다는 점 그리고 6월 3일까지 순례자들의 황금사원 출입을 허용했다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14) India Today. 2018.06.06. What happened during 1984 Operation Blue Star? 
15) Karim, Afsir. 1991. Counter Terrorism, the Pakistan Factor. Lancer Publishers; Delhi.      p.33–36.
16) Westfall, Sammy. 2023.09.19. Washington Post. What is the Khalistan separatist movement behind the India-Canada rift?. 
17) 이 사태에서 인도 군경(軍警) 3,468명이 사망했고, 7,946명의 무장세력 그리고 11,690명의 일반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Wikipedia. Insurgency in Punjab, India. 
18) 이 수치는 비거주 인도인(Non Resident Indian),, 인도출신 현지인(Persons Indian Origin), godhl거주 인도인(Overseas Indians)을 합친 것임. Goverment of India. Ministry of External Affairs. Population of Overseas Indians. 
19) World Sikh Orgarnization of Canada. THE PROVINCE: SOME KEY DATES IN A CENTURY OF SIKHISM IN B.C. 
20) Government of Canada, Statistics Canada. 2022.10.26. Religion by visible minority and generation status: Canada, provinces and territories, census metropolitan areas and census agglomerations with parts. 
21) Shukla, Srijan. 2019.11.01. The Print. How are Sikhs so powerful in Canada? It’s not  about their numbers. 
22) Talent.com의 검색결과
23) Hrishikesh, Sharanya. 2023.09.27. BBC News. Air India flight 182: 1985 bombing back in news after Canada row.
24) Bhugra, Saloni & Aulakh, Satbir Singh. 2023.10.15. CBC News. Why Canada is becoming the focus of India's concerns about the Sikh separatist movement. 
25) 하르딥 싱 니자르(1977-2023)는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다. 시크교도들은 평화적인 칼리스탄 운동가로 묘사하는 반면, 인도 정부는 칼리스탄 무장단체에 연계된 범죄자이자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체포에 힘을 쏟았다. 원래 인도의 펀잡에서 태어났지만 1997년 위조여권으로 캐나다에 입국, 망명신청을 하였으나 거부당했고 우여곡절 끝에 2007년 시민권을 획득했다.
26) The Conversation. 2023.09.20. The fraught history of India and the Khalistan movement. 
27) Mason, Jeff & Patel, Shivam. Reuter. 2023.11.23. US thwarted plot to kill Sikh separatist in America. 
28) CTV News. 2023.09.20. Hardeep Nijjar met CSIS every week before killing that Trudeau    links to India: son. 
29) 미국과 영국을 필두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다섯 개 국가가 참여하는 정보기관 공동체. 
30) Akbarzai, Sahar & Rhea Mogul, Helen Regan. 2023.09.27. CNN. Western intelligence led to Canada accusing India of Sikh activist’s assassination, US Ambassador says. 
31) Hindustan Times. 2023.12.28. Nijjar murder suspects never left Canada, to be arrested soon: Report.
32) Tasker, John Paul. CBC. 2023.09.18. Trudeau accuses India's government of involvement in killing of Canadian Sikh leader.
33) Government of Canda. Cultural Diversity in Canada: The Social Construction of Racial Difference.   
34) Government of Canda. Canadian Multiculturalism: An Inclusive Citizenship. 
35) 캐나다 정부의 강경책의 배경에는 하원의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집권 자유당(Liberal Party)이 칼리스탄 운동에 동정적인 시크가 당수로 있는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의 지지를 받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Takahashi, Toru. Nikkei Asia. 2023.10.03.  Canada's dispute with New Delhi reflects dawn of 'Indian century’. 
36) Mogul, Rhea & Suri, Manveena. CNN. 2023.09.22. India calls Canada a ‘safe haven for terrorists’ after suspending visas for Canadian nationals. 
37) Gandhi, Sonia. The Hindu. 2023.04.11., An enforced silence cannot solve India’s problems. 
38) 2023년 인도인민당 당원이 간디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현재 최고법원의 최종판결이 남아 있다. 
39) Singhal, Anshul. Y-AXIS. 2023.03.31. Indians migrating to Canada tripled since 2020, soon to reach 2 million mark.
40) Firstpost. 2023.09.25. How Indian students contribute crores every year to Canada’s economy.
41) Bhattacharyya, Anirudh. Hindustan Times. 203.12.05. 40% decline in applications from India for study permits to Canada in the second half of 2023.  
42) Bhattacharyya, Anirudh. Hindustan Times. 2020.12.02.  Poll shows more Canadians see India as an opportunity, China as a threat.
43) O'Neill, Natasha. CTV News. 2023.10.12. PM Trudeau said he 'deplores' India's violation of the Geneva Convention by suspending the diplomatic immunity of Canadian diplomats.was involved in a B.C. Sikh's death. 
44) Government of Canada. 2022.10.26. Ethnic or cultural origin by gender and age: Canada, provinces and territories, census metropolitan areas and census agglomerations with parts. 
45) The Economic Times. 2023.01.23. Let's make the 21st century the 'century of India': PM  Mo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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