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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남아시아 정세와 인도 총선으로 본 힌두 종파주의의 쇠퇴와 민족주의의 부상

인도 정호영 자다푸르 대학 사회학 박사 2014/04/08

이 글이 게재될 시에 인도 총선이 진행될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가 집권을 하게되면 힌두 종파주의 정치로 무슬림과 충돌을 빚을 것인지 아니면 이전과 다르게 무슬림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갈 수 있을지 모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힌두 종파주의 정치는 국내외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에 힌두 근본주의 정치는 민족주의 정치로 변신을 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세계시장 편입의 필요에 따른 정치 지형에 맞추어서 BJP는 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걸고 민족주의 정당으로 계속 변화를 해오고 있다. 인도 내에서 힌두-무슬림간의 사소한 갈등들은 지역에서 계속 있겠지만 이전과 다르게 전국적인 파장을 불러올 극단적 모습은 최대한 막을려고 할 것이다.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 보아야 할 것은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도 내에만 시선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남아시아라는 큰 맥락 속에서 BJP가 변화를 왜 할 수 밖에 없는가를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BJP의 힌두 종파주의 정치의 기존 이미지와 새로이 제시하고 있는 민족주의의 이미지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 비교를 통해서 BJP가 어떻게 무슬림까지도 포섭해서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는 향후 인도 사회를 읽는 예제로서 BJP의 총선 캠페인을 짚어보아서 향후 인도 사회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시도하는 것이다. 

남아시아 상황은 더 이상 힌두 종파주의 정치를 허락하지 않는다. 

남아시아 국가들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몰디브 이 4개국이 이슬람 국가들이다.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의 이슬람주의자들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인들으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동, 중앙아시아에서 온 무슬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인도에서의 무슬림 테러들 또한  다국적 팀에 의해 일어났다. 국적은 다르더라도 이슬람주의자들은 이슬람주의 실현을 위해서 언제라도 명분이 있다면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입은 이슬람주의 세력이 아프가니스탄을 거쳐서 소련으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소련은 파키스탄이 전통적인 우방인 중국과 미국의 지원 하에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가져서 중앙아시아의 이슬람주의 세력들과 연결하여 반인도-반소련/친중-친미 진영을 구축하는 것을 막고자했던 것이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이 밀려오는 것을 두려워해서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입했다는 설은 이슬람주의의 영향력을 소련이 두려워했다는 맥락에서 고개를 조금 끄덕일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주요 원인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이전 이슬람 지역이었던 중앙아시아에서 독립 국가들이 생기자 이들 각 나라를 오가는 해방당, 아끄라미야,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운동(IMU) 등의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생겨났고 이들이 중동과 남아시아의 이슬람주의자들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은 소련의 우려가 사실이었음을 보여준다.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는 이전 소련 영토 내의 중앙아시아 지역들을 독립시키어서 중앙아시아 지역 관리의 부담을 덜어버렸다.

 힌두 종파주의 정치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1992년 아요디야 사건 때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물러나고 현재와 같은 미국 중심의 남아시아 질서 재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공백의 시기에 일어났다. 아요디야 사건 이후 방글라데시에서는 바로 이에 따른 반응이 이어졌다. 따슬리마 나스린(Taslima Nasrin)이 쓴 힌두가족이 무슬림에게 배격을 받는다는 허구적인 내용의 소설인 라쪼(Lajja, 수치 1992)가 문제가 되었고 이슬람주의자들은 격렬하게 거리에서 “배교”에 대한 처벌로 그녀의 죽음을 요구했다. 이슬람주의 정당들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BNP 정부는 이슬람 종교 모독에 관한 형법으로 따슬리마를 법정에 세웠다. 다행히 서구 정부와 국제작가협회(PEN)의 압력으로 그녀는 사형 대신 스웨덴으로 추방당했다. 이렇게 90년대초에도 남아시아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의 국적을 떠난 자연스러운 집단행동이 있었다. 2001년 미국은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안정화를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을 시작하였다. 2002년 말경엔 탈레반은 사실상 궤멸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2002년 모디가 주수상으로 있던 인도 구자라트에서 고드라 사건이 일어나 무슬림에 대한 학살이 있었다.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세계 시장 질서 안정화를 위해 전쟁까지 한 미국으로서는 인도에서 발생한 구자라트 고드라 사건이 남아시아 전체로 파급될지 모르는 가능성에 대해서 못 마땅했을 것이다. 2005년 미국에 의해서 아프가니스탄 정부 체제는 변화했다. 새 헌법이 발효되고, 선거 절차에 의해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2005년 9월에 의회 선거가 치러졌었다. 미국은 이 시기에 2002년 고드라 사건에 대한 혐의로 모디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였다. “종교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가 이유였다. 미국으로서는 ‘친이슬람’의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던 시기였기에 이런 조처가 취해졌을 것이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모디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를 대비해서 그동안 모디에게 쌀쌀맞게 대했던 인도 영사 파웰은 3월말 사임했다. 그러나 파웰의 개인적인 성향이 그동안 모디를 쌀쌀맞게 대했다기보다는  남아시아 전역에 이슬람주의를 다시 발생시킬 수 있는 힌두 종파주의를 경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을 대변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미국은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에 군사기지를 설치해서 이슬람주의의 확산을 막으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남아시아 진출을 경계하고 있다. BJP 집권 시기인 2003년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당시 총리는 인도를 강대국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자신의 20개년 계획이 원활히 수행되려면 미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쉽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나라의 힘과 영향력을 해외의 그 어디로든 확장할 수 있는 인도의 능력이 크게 저하될것"이라고 말하였다. 인도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과 전쟁 시기에 미군에 항만시설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2005년 3월 콘돌리자 미국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가 인도를 글로벌 강대국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남아시아 안정화를 위해서 인도를 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이 남아시아 각국에 군사기지의 설치를 통해 남아시아의 안정화를 바라는 것은 남아시아 각국을 세계 시장 질서에 편입시키기 위한 것이다.

 종교분쟁으로만 알려진 자무 카시미르 분쟁의 원인은 파키스탄 농지의 70%에 물을 공급하는 카시미르의 인더스 강 – 파키스탄이 자무 카시미르를 파키스탄의 머리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 과 지하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사실상 더 큰 이유이다. 1960년대 세계은행의 중재로 파키스탄과 인도는 인더스 강 수자원 조약을 하여 분쟁의 가능성을 줄이게 되었다. 당시 수량의 80%를 파키스탄으로 보내겠다고 인도가 양보를 하고 파키스탄도 중재에 합의를 했던 것도 두 나라 모두 세계은행으로부터 지원을 받기 원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와 비교하여 양국은 보다 더 많은 FDI가 필요한 상황이기에 FDI 유입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지역 안정을 위해 이전과 같은 종교를 표면에 거는 충돌은 피할 것이다. 현재 양국은 산업의 발달에 따라 인더스 강의 수자원을 더 필요로 해서 생긴 갈등이 발생하고 있지만 타협중이다. 지역 갈등을 막는 것을 중심으로 남아시아 정치는 돌아가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도 페르베즈 무샤라프 전 대통령이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지 못하자 미국의 압력을 받고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를 불러들인 후 정권에서 퇴진되었다. 그리고 두 번의 집권시기(90년, 97년)에 외환규제 완화, 주식시장 개방, 국영기업 민영화를 실시했던 나와즈 사리프 총리가 집권을 하자 무샤라프는 2014년 3월말 반역죄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의 조직원들과 연계하여 2011년 델리 폭탄 사건을 일으킨 하르캇 울 지하드 알 이스라미(Harkat-ul-Jihad al-Islami)를 비롯한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3년 6월 미국 7함대 함장이  방글라데시를 직접 방문하였는데 미국 제 7함대의 방글라데시 진출 때문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인도 일간지 Times of India에 보도되었고 미국은 이 사실을 부인했다. 그러나 미국은 전통적인 친중국국가인 파키스탄에서의 미군 기지 이전을 검토하고 있고 중국이 물류 수송의 안정화를 명분으로 남지나해에 해군력을 키우는 것에 대한 경계하고 있어서 국방부에서 공식적으로 진주 목걸이 이론(strings of pearls)을 발표했기에 이런 추측은 나올만 했다. 방글라데시는 이에 대해서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데 국내 이슬람주의자들의 반발이 두렵기도 하지만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방글라데시에 7함대의 진출은 현재로서는 현실화될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만약 진출하게 된다면 그 명분은 세계시장 질서의 안정화일 것이다.

 미국의 세계 질서 안정화 노력에 맞추어 남아시아 각국은 세계시장에 편입되기 위해서 자국 내 개혁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의 바로미터는 FDI 유치 실적이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에 대한 원조와 FDI 유치 성적과 이들 국가의 사회안정상태를 같이 보면 바로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모디 같이 FDI를 잘 유치하는 정치인은 세계시장 질서에 안정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국수주의 정당으로 여겨지던 BJP는 이전 집권시기에 개혁을 당의 모토로 내걸면서 스와라지는 국내에서 머무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가서 싸워서 이기는 것이라고 재해석하였다. 구자라트에는 미국 자동차 Big 3중 둘인 포드와 GM이 들어왔고 클린톤 기후 사업단(Clinton Climate Initiative)은 아시아 최대의 태양공원(Solar park)을 만들었다. BJP가 내세우는 모디는 FDI를 가장 성공적으로 유치하여 개혁을 선도한 정치인의 모범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2013년 영국이 모디와의 외교 거부를 끝냈고 독일과 여타 EU 국가들도 이를 따라갔고 2014년 2월 미국 대사인 낸시 파웰도 모디를 만나 모디의 경제발전을 높이 평가한다는 발언을 하였다. BJP의 모디는 세계 시장 질서 속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해 들어가고 있는 남아시아의 대표적 정치인이 되었다.


무슬림 이미지의 변화 – 쉬바지가 싸운 무슬림 침략자 VS 라마야나를 체화시킨 애국적 무슬림

BJP는 이런 변화된 정세 속에서 종파주의 정치를 민족주의 정치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기존 종파주의 정치에서 무슬림의 이미지는 무굴 황제 아우랑제브의 이미지이다. 악바르 때 폐지시켰던 힌두에게 부과했던 인두세를 부활시키고 강제 개종을 시켰으며 힌두 사원을 허물고 그 위에 모스크를 짓던 침략자의 이미지였다. 아요디야의 참사 또한 라마 신의 사원을 부수고 무굴의 1대 황제 바부르가 모스크를 세웠기에 라마 신의 사원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BJP는 무슬림의 이미지를 무굴 제국의 가장 잔혹한 황제 아우랑제브의 이미지로 설정했고 BJP의 이미지는 침략자에 대해서 싸우는 마라타족의 영웅 쉬바지의 이미지를 사용했었다. 그리고 지금 민족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BJP는 기존 아우랑제브와 싸우는 쉬바지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도 새로 확보한 영토에서 무슬림에게도 포용적이었던 쉬바지의 새로운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BJP의 민족주의는 무슬림의 이미지도 변화를 시켰다. 아우랑제브의 이미지로 대변되는 무슬림들은 반국민적 무슬림이라고 칭하고 여전히 단호하게 싸우겠지만 인도에 충성하는 무슬림은 섬멸 대상이 아니라 인도 땅에서 같이 살아가는 인도인일뿐이라며 무슬림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인도 땅에서 살아가는 애국적인 무슬림이란 어떤 이미지일까? 힌두 신화인 라마야나는 300가지 이상의 버전이 있다. 케랄라에서 오래전부터 배를 만들던 카스트인 모필라들 사이에 떠도는 이슬람식 라마 이야기도 있다. ‘술탄 람’ 이 열대 기후인 인도 남부의 이슬람 지역에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는 내용이다. 심지어 타밀에는 라마야나를 모델로 한 “예언자의 일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라마야나는 모든 종교가 함께 인용할 수 있는 공통의 뿌리가 된 것이다. 이를 인도 대법원의 저명한 판사이자 이슬람교도인 한 인사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나라 전체가 람잔마부미, 즉 라마의 고국이다. 하지만 람잔마스탄,즉 출생지는 수백 년 동안 슈리 라마를 마리아다 푸르쇼트람,즉 곧음, 성실성,품위, 순수한 인간상의 이상으로 삼아 사랑하고, 존경하고,숭배해온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며 인도에서 살아가는 무슬림이 애국적인 무슬림이다.

 BJP는 반무슬림 정서를 정면에 내세운 종파주의에서 모든 인도인을 포괄하는 민족주의로 변신했고 이 민족주의는 종교를 떠나 모든 인도인들에게 필요한 국가의 부국강병을 위한 개혁의 전망을 보여준다. 이 개혁에서 무슬림 또한 애국적 인도인이라면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도만의 추세가 아니다. 부시 정권 당시의 사무엘 헌팅턴 류의 학자들이 내세우던 이슬람과의 충돌 불가피를 강조했던 [문명의 충돌]이론이 더 이상 미국의 국제 정치에 적합하지 않게 되자 오바마 정권 들어서서 피터 R. 데만트(Peter R. Demant)와 바삼 티비(Basam Tibi) 등의 학자들은 [이슬람과 이슬람주의(Islam and Islamism)]를 통해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이슬람 국가 건설을 내세우는 이슬람주의라는 특정 정치 이데올로기와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구분하는 이 틀은 새로운 주류이론으로 등장했고 BJP의 변화도 이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점령이후에 이슬람 자체를 전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문명의 충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적 추세와 발 맞추어서 힌두트바를 외치던 힌두 종파주의자들도 이슬람교를 믿고 라마야나를 체화시킨 애국적인 무슬림들과 친파키스탄 혹은 무슬림 국가를 인도에서 건설하려는 특정한 종파주의 이데올로기 즉 이슬람주의를 가진 반국가적 무슬림들을 구별하기 시작하였다. 이 민족주의는 반무슬림 정서를 배제함으로써 과거의 종파주의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반파키스탄 정서는 민족주의 고취를 위해서 언제든지 사용한다. BJP의 창립 멤버이자 지도부였던 자스완트 싱(Jaswant Sing)이 2009년 [진나 – 인도, 분단, 독립(Jinnah- India, Partition, Independence)]란 책을 통해 인도 분단은 반인도적 분열주의자인 진나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네루 등 당시 인도 지도부들과 합의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을 내었을 때 그는 BJP에서 탈당을 당했고 이번 총선에서도 BJP 후보가 아닌 독립 후보로 나가야 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반파키스탄 시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파악해보려는 태도는 반민족, 반국가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이 책은 모디의 구자라트 주에서는 금서가 되었다.) 선거에서 자스완트 싱이 자신의 행동이 반민족적이 아니고 합리적이라고 제시하는 근거는 재미있게도 자신의 후보구에서는 BJP보다 자신이 무슬림들의 지지를 더 많이 받는 후보라는 것이다. 자스완트 싱의 이런 발언은 무슬림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는 것이 가장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현재 인도 정치가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번 총선 캠페인에서 위력을 보이고 있는 BJP의 민족주의

인도 하원 545석 중 불과 6석 밖에 되지 않는 자무-카시미르주는 인도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구들중 하나이다. 이 6석을 확보하느냐 못 하느냐는 인도의 13%를 차지하는 인도 무슬림들을 포섭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모디는 대규모 전국 선거 캠페인으로 기획된 185개의 인도의 승리 집회(Bharat vijay rally)의 첫 번째 집회를 3월 26일 자무 카시미르주에서 가졌다. 자무-카시미르주에서 아침에 일어난 직후 인도여신에게 경건하게 푸자를 올린 후 인도의 애국적 무슬림들 앞에서 인도에 번영을 가져다 줄 개혁을 실시할 것을 약속하는 것이다. 모디는 이 첫 번째 집회를 성공적으로 열기 위해 2013년 12월 자무 카시미르주를 사전 방문할 때 큰 선물을 들고 갔다. BJP는 무슬림이 다수인 유일한 주인 자무 카시미르 주에 특별한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인도 헌법 370조가 인도의 통합에 걸림이 된다고 반대해왔었다. 모디는 2014년 12월 카시미르 방문 당시 이 조항이 해당되는 주인 자무 카시미르주의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닐 것만을 검토하겠다고 입장을 밝힘으로써 BJP의 정책이 바뀌었음을 알렸다. 이에 자무 카시미르주의 분리주의 지도자인 미르와이즈 우마르 파룩(Mirwaiz Umar Farooq)은 모디에게 격찬을 보내고 모디가 이를 실천할 사람이라고 확신한다고 하였다. 자무 카시미르 주의 야당인 PDP(People Democratich Party)는 자무 카시미르 주의 여당인 NC(National Conferece)와 연합관계인 국민회의가 BJP의 자무 카시미르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비난을 하였다. PDP는 BJP와 더불어 차기 집권을 원하고 있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자무 카시미르에서 보여준 모디의 발언은 전국 정당인 BJP만의 변신만이 아니다. BJP의 오랜 지역 파트너 정당인 쉬브 세나 또한 이번 총선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힌두 종파주의에서 민족주의로 변신하였음을 보여주었다. 쉬브 세나의 최고 지도자인 유다브 타커레이(Uddhav Thackeray)는 “인도를 그들의 모국으로 생각하는 무슬림들은 이 나라의 법을 존중하고 폭동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유다브는 아버지 발(Bal)로부터 선거구를 물려 받았다.-처럼 우리는 그런 무슬림들과는 쟁점이 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무슬림들은 이 나라에서 살 권리가 없다”라고 자신들의 당기관지에서 밝혔다. 이전과 다르게 반무슬림 정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애국적인 무슬림과 반국민적 무슬림을 구분하여 종파주의 정치의 한계를 벗어나 민족주의로 갈아탄 것이다. 하이데라바드의 무슬림 종파주의 정치가인 악바루딘 오와이시(Akbaruddin Owaisi)가 15분만에 힌두들을 전멸시키겠다고 한 발언에 대해서도 이전과 다르게 대응하였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진정한 힌두이셨지만 무슬림을 15분만에 전멸시키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오와이시처럼 격분해서 파키스탄 힌두들 사이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누가 그들을 보호할 것인지는 힌두들이 결정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힌두가 소수인 파키스탄에서 종파주의 힌두 지도자가 다수의 무슬림들과 적대한다면 과연 힌두들에게 도움이 되겠냐고 빗대면서 무슬림 종파주의 정치는 막을 내려야 한다고 점잖게(?) 조언을 하고 스스로를 무슬림 종파주의 정치가와 차별화시킨 것이다. 인도에서의 힌두 종파주의 세력들은 이렇게 민족주의로 변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신의 성공으로 델리 북부 지역와 같은 지역에서는 무슬림 지도자들이 BJP에 표를 몰아주기 위해서 무슬림들 공동체를 동원하고 있다.

총선 이후 향후 인도 사회 전망

 인도에서 종파주의 정치는 이제 쇠퇴를 했다. 힌두 종파주의, 힌두트바 세력들에게는  위에서 살펴본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무슬림들이 더 이상 공식적으로 공격 대상이 아니다. 세계 시장에 깊숙이 편입되려고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는 세계 시장 질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국내외의 충돌을 최대한 막을려고 노력하고 있다. BJP가 집권을 하게 되면 세계시장에 깊숙이 진출하여 부국강병을 가져오는 개혁이미지로 집권을 하게 될 것이기에 개혁은 가속화될 것이다. 국민회의 또한 1기 UPA 정권때부터 미국과의 핵협정을 통해서 세계시장에 깊숙이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지만 개혁의 속도는 BJP와 다를 수 밖에 없다. BJP가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공약으로 당선이 되면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는 명분을 가지게 된다. 또 BJP는 당내 상명하복구조가 강한만큼 당 내 의사 진행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하여 집권을 하게 되면 국민회의 집권 시기보다 개혁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이러한 인도 사회변화와 그 개혁의 진행 상황을 세계시장과 그에 편입되어가고 있는 남아시아 전체 정세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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