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영역 건너뛰기
지역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전문가오피니언

Malaysia, Truly Asia의 세 가지 모습

말레이시아 이재현 외교안보연구원 객원교수 2012/02/28

‘Malaysia, Truly Asia’는 말레이시아 관광청이 말레이시아 관광 홍보를 위해 만든 슬로건으로 대단히 큰 히트를 친 구호이다. 필자의 동남아 정치 수업시간에 말레이시아라고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학생들의 반응이다. 또한 이 구호는 말레이시아의 사회적 현실을 아주 간결하게 잘 파악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회는 크게 세 가지의 종족, 즉 말레이인, 화교, 인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종족은 아시아에서 인구수로 가장 대표적인 종족이기도 하다. 중국인과 인도인의 수는 다시 한 번 말할 필요가 없고, 말레이-인도네시아인도 유사한 언어를 쓰는 필리핀까지 하나의 종족 군에 넣는다면 약 4억 가까이 될 것이다. 이 세 개의 아시아 대표종족인 말레이시아라는 국가 하나에서 발견되니 ‘Malaysia, Truly Asia’로 부를 만도 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이런 종족 다양성이 나타나게 된 역사적 배경은 말라카 왕국이 세계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가깝게는 영국 식민지배하에서 유입된 화교와 인도인들이 그대로 말레이시아에 정착하면서 만들어졌다. 오늘날 인구의 분포를 보면 대략 말레이인이 60%, 화교가 25% 이하, 그리고 인도인이 7%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더욱이 말레이시아는 독립 초기부터 말레이 문화 외의 다른 문화들에 대해서 비교적 관용적인 정책을 취했다. 중국어 학교와 중국인들의 문화, 의식, 인도어 학교와 그들의 문화적 특성을 크게 억압하지 않았다. 물론 다수를 구성한 말레이인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국가 통합이라는 대의명분 아래 정부는 이런 정책의 방향을 유지했다. 그 결과 화교와 인도인은 그들의 이름과 언어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지금‘Malaysia, Truly Asia’라는 구호에서 보듯이 말레이-이슬람 문화, 화교문화, 인도인 문화뿐만 아니라 사바, 사라와크의 소수종족 문화까지 포함해 다양한 문화적 특성이 공존하는 사회가 되었다.

 

‘Malaysia, Truly Asia’와 말레이시아의 종족적 다양성의 첫 번째 모습은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적 공존과 관련이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1957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말레이시아만큼 종족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족 간 관계를 잘 관리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국가는 보기 드물다고 자부하고 있다. 실제로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종족 간의 내전, 인종청소, 학살 등의 뉴스를 접하면서 종족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큰 내적 갈등 없이 살아가고 있는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주장처럼 모범적인 다종족-다문화 국가라는 평을 얻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말레이시아 다종족 사회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9년 총선 이후 발생한 종족폭동은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중심으로 해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고 군대가 투입된 후에 진압되었다. 물론 1969년 종족폭동이 말레이시아인들에게 상처로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 규모의 종족폭등은 다른 국가들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정도일 수도 있다. 그 이후로 종족 간의 직접적인 충돌이나 그로 인한 큰 사상자가 발생한 적은 거의 없다. 이웃한 인도네시아에서 나타나고 있는 분리 독립 운동으로 인한 갈등과 사상자수, 태국 북동부에서 한때 있었던 분리 독립 및 자치 요구, 그리고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태국 남부에서의 갈등, 필리핀 모로독립운동과 무장투쟁 등과 비교하면 말레이시아의 다종족 사회는 종족 간 조화와 공존의 모범적 사례라 할만하다. 
 

‘Malaysia, Truly Asia’의 두 번째 모습은 첫 번째 모습 보다는 덜 긍정적이다. 말레이시아의 정치, 특히 정당정치와 정당체계는 앞서 말한 다종족 사회의 조화로운 운영이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현 말레이시아의 정당체계는 UMNO(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을 중심으로 해서 10여개가 넘는 정당이 모인 집권연합, 국민전선(Barisan Nasional; National Front)과 세 개의 야당이 연합하는 국민동맹(Pakatan Rakyat; People's Alliance)이 경쟁하는 형국이다. 물론 독립이후 지금까지 집권해 온 UMNO를 중심으로 한 국민전선(1070년대 이전에는 동맹당-Alliance Party)이 아직까지는 압도적으로 야당을 누르고 있다. 문제는 말레이시아의 정당들은 거의 대부분 종족 지지에 기반하고 있는 종족 정당이라는 점이다. 집권연합 내의 큰 세 개 정당인 UMNO, 말레이시아중국인연합(Malaysian Chinese Association; MCA), 말레이시아인도인회의(Malaysian Indian Congress, MIC)는 각각 말레이인, 화교, 인도인에 기반을 둔 정당이고 자신의 종족으로부터 대부분의 지지를 얻는다. 그 외의 다른 집권 연합 내의 정당들도 상황은 유사하다.
 

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슬람정당인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rti Islam Se-Malaysia: PAS)은 무슬림인 말레이인들에 기반하고 있고, 민주행동당(Democratic Action Party: DAP) 역시 다종족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화교정당에 가깝다. 유일하게 안와르 이브라힘(Anwar Ibrahim)이 이끄는 인민정의당(Parti Keadilan Rakyat: PKR)만이 그나마 다종족 정당이라고 부를만한 정당원과 지도부 구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다종족 정당을 표방하면서 종족 간 정치적 분열을 극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정당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시도들은 실패로 돌아갔다. 지금 인민정의당이 그나마 다종족 정당으로 1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종족을 넘어서는 다종족 정당이 뿌리 내리기 힘든 것뿐만 아니라 종족 정당의 지도자들은 선거나 정치적 위기 시에 종족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통해서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지속적으로 해왔다. 종족정당 정치엘리트들은 평소에는 종족 간 조화와 공존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치적 지지를 위해서 오히려 종족 감정을 부추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종족간의 조화와 공존의 이면에는 정치적으로 종족별로 분열된 정당들과 그 정당들에 의한 정당체계가 말레이시아 사회에 뿌리 깊게 내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Malaysia, Truly Asia’의 세 번째 모습은 경제에서 발견된다. 1969년 종족 폭동이후 말레이시아 정부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다수집단인 말레이인들의 경제력을 높이려는 부미뿌뜨라(Bumiputera) 정책을 도입했다. 신경제정책(New Economic Policy)으로 이름 붙여진 이 정책은 말레이인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었다. 경제적으로 말레이인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우대금리, 사업허가, 국가의 보조, 말레이인 고용 창출 등 국가의 다양한 지원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말레이인 전문직 육성을 위해 고등교육에서도 말레이인 우대 정책이 시행되었고, 문화 정책에서도 말레이 문화 우대정책이 시행되었다. 결과론적 이야기이지만 이런 말레이시아 정부의 말레이인 우대정책이 종족 간 조화와 공존에 이바지 한 바가 있다. 이후 말레이인의 경제적 좌절감이 다른 종족에 대한 공격으로 크게 나타난 바는 거의 없다. 반면 다른 화교나 인도인 등 경제적으로 차별받은 비말레이인의 경우에도 상대적으로 불이익은 있었지만, 말레이시아의 경제성장에 의한 절대적 경제규모의 확대 속에서 절대적 이익을 본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말레이인에 대한 우대 정책은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은 있지만 현실 상황을 놓고 볼 때 종족 간 win-win의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여전히 남는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일부 비말레이인들은 자신들이 겪은 상대적 박탈에 대해 여전히 항의하고 있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과연 말레이인 우대 정책이 말레이시아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라는 점이다. 말레이인에 대한 경제적 우대정책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논리에 따른 경제자원의 왜곡된 분배라고 볼 수 있다. 시장 논리에 의한 자원의 효과적 배분이 경제성장에 최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말레이인 우대정책이 자원의 효과적 배분을 가로막는 왜곡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서 말레이시아의 잠재적 경제성장에 장애물이 되어왔고, 여전히 이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1970년대 초 도입되어 40년이 넘게 시행되고 있는 말레이인 우대정책을 이제는 졸업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경제적 자원 분배의 왜곡과 잠재 성장에 대한 장애물은 둘째 치고 이미 말레이인들의 경제력이 비말레이인들을 넘어섰으며 따라서 더 이상의 말레이인 우대정책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Malaysia, Truly Asia’홍보 동영상은 말레이시아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현대화된 도시, 친절한 말레이시아인들의 모습과 함께 말레이-이슬람, 화교, 인도인, 사바-사라와크의 원주민, 그리고 말레이반도 원주민인 오랑 아슬리(Orang Asli)의 문화까지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말레이시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의 공존 이면에는 다소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물론 이런 어두운 면이 지금까지 말레이시아의 성장과 발전, 그리고 종족 간 조화로운 공존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러한 동전의 양면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본 페이지에 등재된 자료는 운영기관(KIEP)AIF의 공식적인 입장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