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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의 장기화와 미얀마 내수시장의 위기

미얀마 KOTRA 2024/05/30

경제난 이후 생활소비재, 식료품 가격 상승 및 판매 감소 현상 뚜렷
중산층의 붕괴와 소비 역량 쇠퇴 우려도 커져



소비시장의 성장과 최근의 경제위기

 

2010년대 초중반부터 뒤늦은 경제개발을 시작한 미얀마는 아세안(ASEAN)을 대표할 신흥 소비시장으로 주목받아 왔다. 글로벌기업들은 미얀마를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보고 앞다퉈 현지에 진출해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였으며, 이 때부터 급격히 보급된 미디어와 인터넷이 청년층의 현대화된 소비를 선도하기도 했다. 케이팝(K-Pop)과 케이드라마(K-Drama)를 앞세운 한류와, 이 한류 열풍이 이끈 케이뷰티(K-Beauty), 케이푸드(K-food) 소비도 이 시기에 나타난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급속한 경제발전이 튼튼한 소비 기반을 구축해주기도 했다. 실제로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이전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근로자가 늘었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한 제품을 공급해줄 유통망도 빠른 속도로 확충됐다.

 

그러나 이후 미얀마의 내수시장은 불과 5년 남짓 이어졌던 짧은 호황을 뒤로 한 채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특히 2021년 2월 1일 군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 내수 소비를 비롯한 모든 경제활동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국제사회가 유혈진압으로 일관하는 군정에 경제 제재를 부과하자 신시장 개척을 위해 미얀마에 진출했던 글로벌기업들도 투자를 줄이거나 현지 경영을 포기해야 했다.



반면에 적지 않은 글로벌기업들은 여전히 정세를 관망하며, 현지에 남아 있다. 일부 투자가들은 군정의 총선 재실시 및 민정 이양을 기대하며 정세를 세심히 분석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가 비상사태 시작 이후 약 3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얀마의 시장 여건은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국제사회의 제재와 현지 정부의 대응 규제가 추가로 도입되며 기업 경영이 더욱 어려워졌다. 2022년 4월 발표된 미얀마 중앙은행의 ‘달러화 강제 환전 및 거래 금지조치’, 2022년 10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Financial Action Task Force)의 ‘고위험국(High-risk Jurisdiction)’ 재지정, 2023년 4월부터 점진 실시된 미국·싱가포르계 은행들의 달러화 중개 중단 조치 등이 대표적이다. 중앙은행의 강제 환전 조치와 함께 도입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수입 라이선스(Import License) 심사 강화 정책’도 해외제품의 현지 진출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전개 중인 반정부세력과의 무력 충돌, 이에 따른 육상 무역로 단절 사태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근본적 경제 역량의 쇠퇴 징후

 

최근에는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내수시장의 근간인 소비층 자체가 붕괴하는 현상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국제기구와 조사연구기관들 역시 ‘미얀마의 근본적 경제 역량 소멸’을 우려하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경제 외적 애로 요인의 해소 여부와 무관하게 소비시장의 성장을 이끌어갈 동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각종 금융제재로 발생한 외환위기와 이에 따른 달러화 환율의 급등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생활필수품, 고급 소비재, 산업용 원자재의 가격을 일제히 상승시키며 미얀마 경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혔다. 실제로 세계은행이 집계한 2023년의 물가상승률은 무려 20.1%로 나타나며 이코노미스트(Economist) 산하 싱크탱크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Economist intelligence Unit)’도 같은 해의 물가상승률을 12.4%로 추산한 바 있다.



실물거래에 드러난 물가 상승의 심각성

 

소비자들의 구매력 저하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초(超)인플레이션 현상은 실물거래 가격 변화에서도 뚜렷이 확인된다. 먼저 화장품, 의류 등의 생활소비재의 소매가는 현지화 기준 약 10~40% 내외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클렌저는 150㎖ 용량의 제품이 지난해까지 1만3000짜트(Kyat)에 판매됐으나 조사가 진행된 2024년 5월 말 현재는 1만6500짜트에 팔리고 있다. 저용량 클렌저(80g)도 같은 기간 6200짜트에서 9000짜트로 45% 가량 올랐다. 인기 스킨케어 제품과 선크림도 11%에서 17% 사이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물류 공급 문제가 겹친 일부 고가형 제품의 경우 2배 가까운 가격 상승폭을 기록하기도 했다. 5만5000짜트였던 티셔츠 1벌의 평균 구매가도 현재 7만5000짜트까지 오르는 등 의류가격 역시 급등하고 있다. 소비재 외에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 비용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양곤 시내 택시비는 주행거리 10㎞ 기준 운임이 평균 7500짜트에서 1만3500짜트로 상승했으며 일간지 월 구독료는 9000짜트에서 2만1000짜트로 133%나 높아졌다.


생활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식료품에서는 더욱 극심한 인플레이션 현상이 관찰된다. 미얀마인들의 주식인 쌀은 2021년 국가 비상사태 선포 이전까지 1삐(Pyi)에 약 1565.70짜트(Kyat)으나 현재는 같은 양의 가격이 4800짜트로 3배 넘게 올라있다. 현지식 조리에 필수적인 식용유의 가격은 미얀마 정부의 특별관리 노력에도 2배 이상 높아졌다. 콩과 설탕 등 부식과 조미료도 상승폭이 최대 3배에 달했다. 저소득층 주민들이 육류 대체재로 자주 섭취하는 계란의 가격은 개당 150짜트에서 340짜트로 올랐다. 비타민과 섬유질 보충을 위해 필수적인 과일, 채소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거주지 인근 시장에서 판매되는 브로콜리의 경우 2020년 말 한 묶음에 500짜트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8배나 오른 4000짜트를 지불해야 구매할 수 있다. 국경게이트 폐쇄로 수출용 작물 대부분이 내수시장에 유입된 망고(Mango)도 가격 상승을 피해가지 못했다. 차(Tea), 만두, 면류 등 서민들이 아침 식사로 즐겨찾던 노점 음식들의 가격도 1.5배에서 2배 가까이 비싸졌다. 유가(油價) 상승에 따른 물류비 부담 증가와 비료, 농약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생산 원자재의 공급 경색으로 인해 자국산 기초 식료품들마저 일제히 가격이 상승한 것이다. 즉, 현지 산업 공급망 구조의 한계상 ‘자국산 제품’도 환율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재 판매 감소 현상

 

현지 상인들도 인플레이션에 따른 소비 급감을 호소하고 있다. 프리미엄 수입 화장품을 취급 중인 K사 관계자는 “미얀마에서 상당히 소득이 높다고 볼 수 있는 도시지역 전문직 근로자도 월 급여가 50만에서 60만 짜트 사이다”라고 언급하며, “한국 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여전히 높지만 한 세트에 4만 짜트에 이르는 제품 가격은 고소득 근로자들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한 “고가 브랜드를 애용하던 상위계층 소비자들도 현재는 1만 짜트 내외의 저가 상품을 대체재로 선택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역시 수입 화장품을 현지에 공급 중인 B사 관계자는 “경제위기 이후에도 상당 기간 유지되던 상위계층의 수요가 무너지며 소비가 저가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밝혔다.

 

주식인 쌀을 유통 중인 한 소매업체 관계자는 더욱 극심한 인플레이션의 실상을 전하기도 했다. 이 상인은 “미얀마의 서민 가정은 대부분 대가족 형태이며, 영양 섭취도 사실상 쌀에만 의존하고 있어 주민들이 한 번에 큰 바구니 1개(약 48kg)를 구매해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며 “경제난이 심화된 최근에는 반 바구니 혹은 이보다 더 작은 포장을 구할 수 있는지 묻는 소비자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역시 쌀을 판매 중인 다른 소매상인은 “축산사료인 쇄미(Broken Rice)를 찾는 빈곤층이 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상인들은 이와 같은 쌀 소비 위축 현상이 미얀마 정부의 비축미 공급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다며 현재의 지원책이 저소득층의 식량위기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도시 지역 상류층이 주로 찾는 가전제품 판매점에서도 매출 하락세가 관찰된다. 에어컨, 냉장고 등 수입 가전제품을 판매 중인 M사 관계자는 “환율의 영향으로 제품의 현지화 소매가가 2~3배 가량 올랐다”며 고소득층 소비자들도 구매를 망설이다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잦아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에어컨은 여름 성수기를 맞이했음에도 판매가 계속 감소하고 있으며, 현지 전력 사정을 겨냥한 저전력 선풍기, 에어쿨러(Air Cooler) 등 대체재의 인기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붕괴와 소비 역량의 고갈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의 보고서 수록된 설문조사 결과에는 소비 역량 감소가 통계적으로 드러난다. 이 자료에 따르면 미얀마인들은 경제위기 이후 하루 평균 지출의 무려 61.1%를 식품 구매에 사용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식품 외 재화 구매를 위한 지출의 비중은 20.2%, 보건의료 지출은 15.6%, 교육비 지출은 3.1%에 불과했다. 심지어 ‘주성분분석(PCA, principal component analysis)’ 모델의 자산 지표(Asset Index)를 기준 분류상 최상위계층(Q5) 조차 일 평균 지출의 55.7%를 식품 소비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류층 주민들도 비필수 소비재 구매에 사용할 가처분 소득이 더 이상 충분치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참고로 경제위기 이후 미얀마의 빈곤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심화됐는지 분석하기 위해 작성된 이 보고서에는 ‘중산층의 소멸(A Disappearing of Middle Class)’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시사점

 

경제위기 장기화의 악영향은 실물거래 시장과 통계지표에서 모두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생필품과 비필수 소비재를 아우르는 전반적 제품 판매의 감소, 다양하게 나타나는 빈곤의 징후 등은 미얀마의 경제 역량이 한계점에 다가서고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국제기구도 소비시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이제는 ‘현지 정세의 호전과 국제제재 철회 가능성’에만 기대를 걸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미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내수시장의 기반이 취약해진 상황에서는 정치, 외교적 변수가 ‘단기 반전의 모멘텀’ 역할을 할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현지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글로벌기업들도 사태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대응 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소비가 중저가품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수출 상품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거나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주력 상품군의 품목을 재검토하는 거시적 전략의 전환 또한 필요하다. 중산층의 소멸로 일반소비재 시장이 한계를 보이는 현재, 현지 정부가 남아있는 수입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농약·비료·농기계·필수의약품 등 ‘선순위 필수재’에 주력해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자료: 미얀마 통계청(CSO), 세계은행(World Bank), 유엔개발계획(UNDP), KOTRA 양곤 무역관 보유 자료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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