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의 국제적 인정과 외교적 관계
러시아와 중국의 탈레반 인정 및 협력
2021년 8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장악한 이후, 러시아는 2025년 7월 3일 탈레반 정부를 공식 인정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러시아 외교부는 "탈레반 정부의 공식 인정이 양국 간 생산적인 협력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으며, 에너지, 운송, 농업, 인프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러시아가 2024년 4월 탈레반을 테러단체 지정 목록에서 제외한 데 이어 나온 결정이었다.
러시아의 이러한 결정은 과거와는 상당히 다른 입장 변화를 보여준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시작된 10년간의 전쟁에서 약 15,000명의 소련군이 사망했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탈레반에 대항하는 북부동맹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러시아는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ISIS-K)의 위협이 증가하면서 탈레반을 실용적인 파트너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2024년 3월 모스크바 콘서트홀 테러 사건 이후, 푸틴 대통령은 탈레반을 "테러와의 전쟁에서 동맹"이라고 칭하며 관계 강화를 추진했다.
중국 역시 탈레반과의 관계를 꾸준히 발전시켜왔다. 2019년 탈레반 지도자들을 평화협상을 위해 베이징에 초청한 것을 시작으로, 2023년에는 중국국영석유공사(CNPC)의 자회사가 아무다리야 강 유역의 석유 채굴권을 확보하는 25년 계약을 체결했다. 2024년에는 전 탈레반 대변인 빌랄 카림을 중국 주재 공식 대표(공관장)로 인정하는 등 실질적인 외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의 탈레반에 대한 입장과 대응
서방 국가들은 탈레반 정권에 대해 상당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면서 금융 지원을 차단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미 하원 외교위원회는 팀 버첫(Tim Burchett) 의원이 발의한 '테러리스트를 위한 세금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며, 이는 미국의 납세자 돈이 탈레반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독일의 경우 탈레반을 외교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제한적인 기술적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2025년 7월, 독일은 아프간 이주민 송환을 위해 탈레반 정부 대표 2명의 방문을 허용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Friedrich Merz)는 탈레반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이주민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적 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탈레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국가들은 실용주의적 접근을 통해 탈레반과의 협력을 확대하는 반면, 서방 국가들은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이유로 탈레반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분열된 대응은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와 발전에 새로운 도전 요인이 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인도적 위기와 국제 사회의 대응
아프가니스탄 내 인권 문제와 여성의 권리
탈레반 정권 하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인권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국제 사회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여성과 소수자 집단에 대한 조직적인 차별과 인권 침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평가다. 유엔인권이사회(UN Human Rights Council) 제59차 회기에서 리처드 베넷(Richard Bennett) 아프가니스탄 인권 특별보고관은 탈레반 정권이 구축한 사법 체계가 여성들의 정의 구현 통로를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캐나다,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카타르, 아일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스위스를 비롯한 10개국 이상의 국가들이 아프가니스탄 내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하고 나섰다. 이들 국가는 특히 여성에 대한 조직적 탄압과 성차별적 폭력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탈레반 정권의 공개 처형과 억압적 정책에 대해서도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국제사회는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소녀들의 교육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으며, 시민사회 활동가들과 인권 옹호자들을 위한 장기적 전략 수립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특별보고관의 보고서는 탈레반 정권이 여성에 대한 차별을 확대하고, 강제 결혼을 묵인하며,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소수자(LGBTQ+) 커뮤니티, 하자라(Hazara) 공동체를 비롯한 종교적 소수자들의 안전과 권리도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러 국가 대표들은 이들 취약 계층이 국가 주도의 박해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민 문제와 귀환자 지원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문제는 주변국들의 강제 추방 조치로 인해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탈레반 정부의 난민·귀환민 담당 차관 압둘 라흐만 라시드(Abdul Rahman Rashid)는 최근 이웃 국가들의 아프간인 대량 추방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강제 송환이 국제 규범과 인도주의적 원칙, 이슬람 가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3개월간 이란에서만 180만 명의 아프간인이 강제 송환됐으며, 파키스탄에서 18만 4,459명, 튀르키예에서 5,000명 이상이 추방됐다. 또한 1만 명에 가까운 아프간 수감자들이 본국으로 송환됐는데, 이들 대부분은 파키스탄에서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귀환민부에 따르면 현재 약 600만 명의 아프간 난민이 해외에 체류 중이다.
자연재해 역시 아프가니스탄의 난민 문제를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난민·귀환민부의 정책기획국장 마흐무드 알 하크 아하디(Mahmood al Haq Ahadi)는 가뭄, 홍수, 폭풍으로 인해 1만 3,500가구가 실향민이 됐다고 밝혔다. 이전의 실향민까지 합하면 아프가니스탄 내 실향민 가구 수는 약 250만 가구에 달한다.
탈레반 정부는 귀환민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간 적신월사(Afghan Red Crescent Society) 대표 샤하부딘 델라와르(Shahabuddin Delawar)는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육 기회가 제공되고 있으며, 해외로 나가는 시민들을 난민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인도주의 기구들은 귀환하는 아프간인들의 규모와 속도가 이미 취약한 지원 체계에 과부하를 주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적 도전과 국제 협력
탈레반의 경제 개방 및 투자 유치 노력
탈레반 정권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을 타개하고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 누루딘 아지지(Haji Nooruddin Azizi) 탈레반 상공부 장관은 2024년 5월 아스타나 국제포럼(Astana International Forum)에 참석하여 아프가니스탄이 투자에 개방적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는 "여성들이 우리의 경제 발전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하며, 5,000명 이상의 여성 기업가들이 등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유치 노력은 여성 교육 제한과 체스 금지와 같은 탈레반의 강경한 정책으로 인해 서방 국가들로부터 회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아지지 장관은 이에 대해 "우리는 먹을 음식도 없는데 체스가 왜 필요하냐"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특히 그는 러시아의 협력적인 태도를 평가하면서 미국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지역 경제 협력과 인프라 개발
아프가니스탄은 주변국들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경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과의 무역 및 교통 협력이 강화되고 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외무장관 마울비 아미르 칸 무타키(Maulvi Amir Khan Muttaqi)는 파키스탄의 이샤크 다르(Mohammad Ishaq Dar) 부총리 겸 외무장관과 만나 양국 간 무역, 통과 운송, 지역 프로젝트 등에 대해 논의했다.
중국과의 협력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철도 및 도로 프로젝트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 히라탄(Hiratan)에서 파라치나르(Parachinar)와 코핫(Kohat)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이 추진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이 지원하는 카라치-페샤와르 노선과 연결될 예정이다. 또한 탈레반은 이 철도를 남부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Kandahar)와 헤라트(Herat) 지역까지 확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도로 인프라 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마히파르(Mahipar)를 경유하는 기존의 카불-잘랄라바드 도로는 동부 지방들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로 대체될 예정이며, 칸다하르-카불 간 고속도로와 카불-마자르 이 샤리프(Mazar-e-Sharif) 간 고속도로도 건설될 계획이다.
이러한 경제 협력과 인프라 개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금융 지원의 한계로 인해 아프가니스탄의 경제적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서방 국가들의 제재는 아프가니스탄의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탈레반 정권은 중국, 러시아 등 비서방 국가들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상황과 지역적 영향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의 탈레반의 역할
아프가니스탄의 안보 상황은 탈레반 정권 수립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탈레반과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간의 갈등 관계다.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 특별대표인 자미르 카불로프(Zamir Kabulov)는 탈레반 정권이 테러리즘과의 전쟁에서 "객관적 파트너"라고 평가하며, 러시아가 이들을 무장시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현 안보 상황이 "서방 점령 시기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지역 안보 협력과 외교적 대화
아프가니스탄은 중국, 파키스탄과의 3자 외교를 통해 지역 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카불에서 개최된 제6차 아프가니스탄-중국-파키스탄 외무장관 회담에서는 3국 간의 정치·경제적 협력이 논의되었다. 아미르 칸 무타키(Amir Khan Muttaqi) 외무장관 대행은 3국 간 정치·경제적 유대 강화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양자 및 3자 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인도-파키스탄 간의 긴장 관계는 아프가니스탄의 지역 안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외교부 전략연구센터는 인도-파키스탄 간 긴장이 지역과 아프가니스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외교부 제1정치국장은 아프가니스탄이 지리적으로 파키스탄과 인도 모두와 인접해 있어, 양국 간 긴장 고조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적인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카슈미르에서의 관광객 공격 사건 이후 악화된 양국 관계는 와가(Wagah) 국경 폐쇄와 같은 조치로 이어져 지역 전체, 특히 아프가니스탄에 영향을 미쳤다. 아프가니스탄은 균형 잡힌 외교 정책을 통해 인도-파키스탄 간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선호하며, 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지역 안보 상황 속에서 중국은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긴장 완화를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선임 안보 분석가인 하크 나와즈 칸(Haq Nawaz Khan)은 "중국이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결속력"이라고 평가했으며, 지역 재편성과 발전,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CPEC) 프로젝트의 성공이 이 지역의 안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