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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스리랑카의 정권 교체에 따른 국제 관계 재편

스리랑카 정호영 자다푸르대학 사회학과 박사 2015/02/13

스리랑카의 새 대통령이 된 시리세나 대통령은 지난 1월 9일 취임식에서 “국제사회와의 유대를 개편하는 외교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이를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 시기의 친중국 관계를 거부하고 미국ㆍ유럽과의 관계 회복으로 받아들이는 분석들이 있었다. 시리세나는 후보자 시절과 당선 직후 중국이 스리랑카에 투자했던 14억 달러(한화 약 1조 5,375억) 가치의 콜롬보 항구도시 프로젝트에 대해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스리랑카가 중국의 진주 목걸이를 끊어버리게 되었다고 단언하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쉽게 예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스리랑카 내각은 2월 5일 이 투자 사업을 승인했다. 중국의 압박에 의해서 승인하였다는 언론보도도 있었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리랑카와 중국과의 관계는 1) 스리랑카의 국내 상황을 고려한 국제 관계의 실용성에 따른 접근과 2) 중국이 주도하고 있는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가지는 영향력을 같이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

서방 국가들은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타밀 반군과 전쟁을 벌이면서 인권 유린 행위를 자행하자 이를 비판하며 원조를 중단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물러난 만큼 시리세나는 서구와의 관계를 개선하면서 원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서구와의 관계 개선이 곧 중국과의 관계 악화로 볼 수 없다. 선거 시기에 시리세나가 중국과의 관계 재검토를 약속한 것은 국내 정치와 얽혀 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이 사회기반시설 공사를 계획하는 과정에서 중국 등 외국으로부터 값비싼 차관을 들여와서는 이를 은폐한 후 횡령하였다. 정권이 바뀌자 이에 대한 조사를 받지 않기 위해서 경제부 장관을 맡고 있던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바실 라자팍사는 가족과 함께 출국을 해버렸다.

스리랑카와 중국의 오랜 관계를 보면 스리랑카의 실용적인 국제 관계를 볼 수 있다. 1952년 12월 18일 스리랑카와 중국은 ‘고무와 쌀 협정’을 체결했다. 1950년대 초반 쌀은 세계적으로 부족했으며 스리랑카 정부도 쌀이 부족했으나 쌀을 수입할 자금이 없었다. 합성고무의 도입으로 스리랑카 경제가 의존해온 천연고무의 가격이 하락했기에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국은 UN의 제재로 말레이시아(말레이지아와 싱가폴이 분리되기 전)로부터 수입하던 천연고무를 공급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는 중국의 쌀 생산에 여유가 있을 때였다. 스리랑카의 상무부 장관이었던 R. G. 세나나야케측의 제안으로 구상무역이 이루어졌는데 중국으로서는 최초의 비공산국가와의 교역의 시작이었고 당시 중국 수상이었던 저우언라이가 협상 테이블에 나았다. 당시 스리랑카의 정치적 분위기는 친서구였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스리랑카는 냉전 시기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실용적인 판단을 한 것이다. 게다가 미국과 에콰도르에서 수입하는 쌀은 스리랑카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는데 중국 수입 쌀은 스리랑카인들의 입맛에도 맞았다. 5년마다 갱신되는 이 협정은 1982년까지 지속되었고, 중국은 천연고무 플랜테이션 비용을 지원하기까지 했다. 1980년대 초가 되자 스리랑카는 쌀 자급이 가능하게 되었고 중국은 경제 제재가 풀려 천연고무 수요를 다른 나라에서도 수입 가능하게 되어 이 협정은 더 이상 유효성이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냉전 시기에도 과감하게 국가 이익을 위해서 결정을 내리는 스리랑카인들의 실용성을 알 수 있다.
 
스리랑카의 지난 정권에서의 경제 성장률은 7%로 이는 중국의 투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 투자는 현지인 고용 창출 효과가 없었고 이 때문에 대다수 서민의 소득은 국가 경제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였다. 게다가 전 대통령 일가의 심각한 부정부패까지 있었다. 새 정권은 중국과의 관계 재검토를 선언함으로써 서구와의 관계 개선과 중국에 대해서 협상력을 높이려고 한 것이다. 콜롬보 항구 프로젝트를 승인하면서 나온 스리랑카 외교부 의견은 중국과 “오해”가 있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의 “국제사회의 유대 개편”은 서구와의 관계도 개선하고, 중국과의 관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해서 양측 모두로부터 이득을 얻는 것이다.

스리랑카와 중국이 다시 활발하게 교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7년 투자조약을 하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스리랑카는 중국의 진주 목걸이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분석들이 나왔다. 진주목걸이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군사강국이 될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파악한 미국 국방부에서 고안한 용어이며 중국은 이 용어 사용을 절대 하지 않는다. 중국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 즉 스리랑카 정부는 유사시에 자국 땅에 중국 해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고, 중국은 여기에 대해서 그런 의도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물론 스리랑카에 중국 잠수함이 2번 왔을 때 인도에 알리지 않은 것은 인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중국은 군사적인 목적이 아니었다고 부인했으며 스리랑카는 여기에 대해서 별일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국은 화평굴기(和平屈起, peaceful rise)란 군사적 위협 없이 평화롭게 성장하겠다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and one road)를 제시하고 있다. 일대는 원벨트'(one belt)를 의미하는데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를 말한다. '일로'(一路)는 하나의 길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해상 협력을 기초로 동남아시아에서 출발하여 서남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이어지는 '21세기 해양 실크로드'를 말한다. 이를 위해 중국은 또 하나의 아시아개발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안 인프라투자은행(AIIB, Asia Infriastructure Investment Bank) 설립을 위한 제안을 2013년 8월에 했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이 강한 아시아개발은행이 아닌 자신이 주축이 되는 또 하나의 아시아개발은행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AIIB(초기 자본금 500억 달러) 참가 의사를 밝힌 나라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남아시아 SAARC 국가들은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하고 모두 참가했다. 심지어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남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이려는 인도까지 참가하였다.

한국 또한 일대일로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스리랑카와의 관계에서 예를 찾아보면 가장 눈에 뜨일만한 예는 현대자동차이다. 중국이 투자하여 건설한 스리랑카의 함바토타 항구의 가장 큰 이용자는 현대자동차이다. 현대그룹의 물류회사인 현대 글로비스는 2014년 12월 현재 인도 첸나이 현대 공장에서 만든 3,000 ~ 5,000대의 차량을 매달 이 항구에서 선적한다. 현대 글로비스는 현대 자동차가 한국, 중국과 인도 세 군데에서 만든 차량을 중동, 아프리카, 유럽으로 수출하기 위해서 매달 15,000대까지 선적량을 증대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현대자동차 중국은 중국정부와 현대기아자동차그룹이 각각 50%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자. 중국의 일대일로에서의 중국과 스리랑카의 관계는 이렇게 우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의 아시아 진출을 고려해본다면 우리도 중국의 일대일로와 AIIB에 대해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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