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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오래된 현실 문제

인도 정호영 자다푸르 대학 사회학 박사 2014/05/12

인도 자무 카시미르 주의 라다크는 우리에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로 알려져 있다. [오래된 미래]에는 라다크 공동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잔치 장면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이 책에서 축제의 어두운 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이 축제에서 음악을 당담하는 카스트인 몬(Mon)과 음악을 연주하면서 유랑하며 걸식하는 베다(beda)는 축제에서 마을 사람들이 쓰는 접시와 컵으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이발사인 가르바(Garba)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불가촉천민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에서는 개발 반대의 낭만성에 대한 경고도 조금 들어 있지만 이 부분은 읽히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낭만적인 반개발에 대한 흥분으로만 읽힌다. 즉 객관적이지 않다. 아마도 이 세상에 어딘가에 소수의 사람들이 물질문명에 빠져들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거란 믿음 때문일 것이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오래된 미래]의 추천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통적인 농촌사회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 사회의 사람들에게 근대적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가 부정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이 말하듯이. 개발과 배움이 오직 한가지 방향으로만 일어나서는 안된다. 라다크와 같은 전통사회의 사람들 속에는 흔히 내면적 발전. 즉 따뜻한 마음씨와 만족감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달라이 라마께서 라다크의 공동체가 가지는 미덕을 강조하시는 것만 읽고 근대적 개발의 혜택을 이들이 누려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무시해버린다. 남아시아에서 카스트 제도는 인도만의 문제도 아니고 힌두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네팔에서도 81%의 힌두교에만 카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라 9%밖에 안되는 불교도들 내에서도 카스트 제도가 있다. 네팔의 불교 카스트에서 최상위 카스트인 구바주 바레크(Gughaju-Bare)는 사제의 신분이고 우레이(Uray)는 상인과 장인의 신분이다. 쟈뿌(Jyapu)는 농민의 신분이다. [오래된 미래]의 서평들 중에는 인도가 라다크를 관광지로 개발을 시작하면서 인도에서 라다크로 카스트 제도가 들어온 것으로 오독을 한 것까지 있었다. 아마도 오래된 미래 라다크는 몇 천년간 행복한 세상이었는데 발전이 시작되면서 파괴되었다고 믿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오독이었을 것이다. 라다크는 바깥 세상과 완전하게 단절된 공동체로 행복하게 살던 나라가 아니다. 티베트 역사에서 최전성기였던 토번 왕국이 9세기에 분열이 된 후 세운 티베트 동쪽에 세운 구게 왕국(Guge dynasty)은 까시미르 지역과 파키스탄의 일부까지 지배했는데 이 지역에 라다크가 들어 있었다. 구게 왕국은 1635년 라다크인들의 공격으로 무너졌다. 구게 왕국의 국왕이 문을 닫고 완강히 저항하자 라다크인들이 매일 산 아래에서 백성들을 대량학살하는 것을 국왕에게 보여주면서 항복을 요구하자 구게 국왕은 투항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라다크는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오래된 미래’가 아니라 정복과 그에 따른 학살을 하던 봉건계급사회로서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그 과거의 유물로서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상업을 거부하고 자급자족으로 살던 나라도 아니었다. 라다크의 주도 레(leh)는 비단길의 교차로 중 하나로 교역의 중심지였지만 해상 교통이 발전하면서 육상무역이 줄어들면서 라다크는 자연스럽게 고립되었던 것이지 ‘오래된 미래’를 지키고 싶어서 고립된 것이 아니다.


<http://voyages.ideoz.fr/ladakh-en-hiver-voyage-inde/ 저자 수정. 티베트 불교 영역과 자무 카시미르 주의 라다크.>

라다크 하면 달라이 라마를 따르는 불교도들의 공동체로 알고 있지만 라다크의 인구는 티베트 방향인 동쪽의 불교도의 레 구역과 파키스탄 방향인 서쪽의 무슬림인 까르길 (kargil)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고 라다크내에서 이들은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으로 지내기 보다는 갈등이 더 크다. 라다크 서쪽에 사는 무슬림들의 삶도 라다크 동쪽에 사는 불교도들의 삶과 차이가 없음에도 이에 대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종교는 티베트 불교처럼 서구의 관심을 받지 못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 내의 유일한 무슬림 주인 자무 카시미르에서 다수 종족인 무슬림들과 소수 종족인 불교도들의 갈등은 심각하다. 1933년부터 LAB(Ladakh Buddhist Association, 라다크불교연합)가 불교도의 이해를 위해 결성이 되었다. 1948년 인도가 독립을 할때 영국이 빠져나간 틈을 타 얼렁뚱땅 라다크의 불교도 지역까지 인도로 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라다크는 인도에 대한 귀속감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불교를 믿고 대대로 티베트의 속국이었다. 라다크어를 쓰지만 그들의 경전은 티베트어로 되어 있었다. 라다크의 종정은 티베트 승려들이 언제나 했었다. 14대 달라이 라마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라다크 인이 라다크의 종정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1989년에는 무슬림과 불교도 사이에 폭력사태까지 있었다. 2000년 LBA는 무슬림들이 불교도 여성들을 강제로 잡아가서 개종시킨다고 주정부에다 고발을 하였다. 2002년에는 라다크 불교도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LUTF(Ladakh Union Territory Front 라다크 연방 전선)가 결성되어 라다크 지역을 자무 카시미르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된 주로 만들 것을 요구하였다. 선거 시기에는 라다크 불교 지역에서 이들이 승리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들은 무슬림이 다수인 자무 카시미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 지진부진했다. 지금은 BJP에 흡수되었다. 이런 자무 카시미르 내 라다크의 불교 무슬림 갈등 때문에 달라이 라마께서는 라다크의 레를 방문하실 때는 무슬림 사회를 방문하셔서 두 종교간의 갈등을 누그러뜨리고자 하신다.

폴 킹노스는 무분별한 개발을 비판하면서 라다크가 가진 지속가능한 농업경제의 긍정성에 대해서 분명히 인정하지만 냉정하게 다음과 같이 비판할 것은 한다.

“인류학자 라비나 아가르왈에 의하면. 라다크를 찾아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시공간을 초월한 목가적인 땅을 보러 온다’는 낭만적 개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논쟁이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라다크 바깥에서 온 활동가들이나 NGO들이 라다크의 과거와 현재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분식(扮飾)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 몇몇 연구자들이 밝혀내었듯이, 라다크 전통사회가 전통적인 소금차의 음용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혈압 발생률을 기록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별로 듣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라다크의 협동적 농사문화의 경이로움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어떤 학자의 견해로, 이 지역의 원주민 몬족과 베다족을 “라다크 사회에서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로 만든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는 거의 들은 바가 없다.”

자무 카시미르의 무슬림들은 불교도들이 만든 음식을 불결하다고 먹지 않는다. 무슬림들에게 불가촉천민 취급을 받는 라다크 불교도들은 같은 불교도들이지만 자신들이 불가촉천민이라 낙인 찍은 몬과 베다를 그와 똑같이 취급한다. 한 예로 이들은 물질문명에 찌든 서양 음악을 비판하고 라다크 전통 음악이 아름답다고 하지만 이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불가촉 천민들은 조금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라다크가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서 이들 불가촉 천민들은 자띠로서 세습되던 직업을 버리고 새 직업을 가졌지만 라다크의 불교도들은 여전히 이들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셨으면 라다크의 불교도들은 왜 부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가? 불교는 어떠한 이기적인 동기 없이 세상 모든 만물의 안녕을 바라는 것인데 같은 종교를 믿는 불교도인데 불가촉천민으로 배제해서 되겠는가?

달라이 라마께서 라다크를 방문하셔서 악기를 연주하고 있던 불가촉 천민 몬을 안으시면서 축복하셨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카스트 제도를 유지하며 사는 라다크 불교인들을 비판하셨다. 한 편으로는 사원을 짓고 부처님의 말씀이 새겨진 축문 깃발을 걸면서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불가촉천민들인 가르바, 몬, 바다는 왜 똑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느냐고 라다크인들을 꾸짖으셨다.(출처:Stanzin Dawa, The Untouchability in Ladakh An Unethical Practice, 2006. 6. 3) 달라이 라마의 이 카스트 제도 비판은 당신께서 린포체 제도가 가지는 폐단을 비판하시고 당신께서는 다시 환생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나온 설법이었다. 티베트를 민주적으로 근대화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신 당신으로서는 당연히 하셔야 했을 말씀이었다.

 라다크는 무슬림과 불교도가 갈등을 가지면서 살고 있고 카스트 제도에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라다크는 티베트 불교도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오래된 과거’로 알려져 있다. 라다크는 신분에 근거한 즉 태어나자마자 신분이 정해지는 계급사회이고 라다크의 불교도 사회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오래된 미래’ 는 어디에도 없다. 오래된 현실 문제가 있고,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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