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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주가-드(Jugaad)를 아세요?

인도 고홍근 부산외대 인도어과 교수 2013/12/08

인도 농촌의 노선버스의 열악함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 시간에 도착하거나 출발하는 버스는 드물고, 항상 공급이 수요에 못미처 버스 지붕위에 앉아서 가야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특히 정류장에서 버스를 탈 때도 커다란 짐 보따리를 들고 버스 출입문을 향해 돌진하는 ‘진격의 인도인’들 때문에 뒤로 밀려 사람들 사이의 비좁은 틈에 끼어 몇 시간 동안 서서 가야 하는 고행을 해야 한다. 여유가 있으면 차라리 렌트카나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겠지만, 그럴 처지가 못 된다면 버스정류장 근처를 유심히 살펴보면 버스이외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길가에 세워진 변형된 지프차들, 화물칸이 붙은 경운기나 트랙터들이 그것이다. 원래 4-5인승(人乘)인 낡은 지프차를 교묘하게 변형하여 10명이상의 승객을 태우고, 원래는 농작물을 실어야 할 경운기의 화물칸에 사람을 태우는 일종의 합승택시들이다. 물론 버스보다는 비싸고 승객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단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엉덩이를 반이라도 걸치고 갈 수 있다는 안락함(?)도 있다. 이런 합승택시를, 그것이 지프차이든 트랙터이든 모두 주가-드라고 부른다.

주가-드는 1980년대 뻔잡 지방 농촌 사람들이 고안한 자체 제작의 운송수단에서 유래했다. 열악한 공공교통수단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농촌 사람들은 철제의 골격에 낡은 지프차의 부품과 차축을 붙이고 관개용 디젤 펌프를 동력원으로 하는 정체불명의 운송수단을 만들어냈다. 이 운송수단에 그들은 싼스끄릿어의 ‘현존하는 문제와 불리한 상황에 대한 혁신적인 해결책’이라는 뜻을 가진 ‘육띠(Yukti)’에서 유래한 뻔잡어 ‘주가-드’라고 이름을 붙였고 이것이 다시 인도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힌디어지역에서는 ‘주가-르’라고 부르기도 함.)  이 주가-드는 공공교통수단의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농촌으로 퍼져나가 지금은 북부의 꼭대기 히말라야의 산간마을에서부터 저 멀리 남부 인도의 해안마을에 이르기까지 인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명물이 되어 있다. 하지만 기술자도 아닌 촌락사람들 몇몇이 모여 이리저리 모은 부품들을 조립하여 만든 운송수단에서 안전성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할 수 있다. 당연하게 인명사고가 빈발하였고 인도 연방대법원은 2011년 각 주정부에게 이 주가-드의 제작을 금지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처음에는 엉성한 운송수단을 가리키는 이 ‘주가-드’라는 보통명사가 요상하게도 현재에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정리하기 위해 신속하고 대체(代替)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라는 의미의 추상명사가 되었다. 이것을, 일부 인도 학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다시 정리한다면 ‘자원의 결핍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즉흥적인 조치 또는 과정들을 총칭(總稱)’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잰 체하는 설명을 빼고, 보다 쉽게 우리 글로 표현한다면 ‘편법’, ‘임시변통’, ‘궁여지책’  또는 ‘임기응변’ 등 다양한 뜻을 갖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머리핀을 갖고 있지 않은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뒤로 말아 고정시킬 때 연필을 마치 비녀처럼 사용한다면 그것도 주가-드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주가-드는 인도에서 일상적인 풍경이다. 폐타이어로 구두 밑창을 수리하고, 다 쓴 1회용 라이터에 다시 가스를 주입하여 사용하고, 폐품들을 조립하여 아이들의 장난감을 만들고, 우유병 입구의 알루미늄 호일들을 모아 설거지용 수세미로 쓰고, 압력밥솥을 개조하여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사용하는 등의 모습은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인구 140만 명에 불과한, 인도 기준으로 본다면 중소 도시인 뻔잡 주의 루디아나(Ludhiana)에서 세탁기 수요가 급증한 일이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세탁기 제조회사는 조사를 시작했고 놀랍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한 결과를 얻었다. 루디아나의 많은 식당들이 옷을 세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많은 양의 라씨(Lassi: 요구르트로 만드는 인도 전통음료)를 빠른 시간 내에 만들기 위해 세탁기를 샀던 것이었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면화나 산초(山椒)밭을 가진 농부들은 코카콜라나 펩시콜라를 살충제로 사용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화학약품 기업에서 만든 살충제의 가격이 높기 때문에 콜라가 대체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인들은 어떤 물품을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어 현실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있다.

주가-드는 물품과 관련된 경우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기나 가스를 훔쳐 쓰는 행위도 주가-드이고 자식을 사립학교에 입학시키기 위해 교장에게 뇌물을 주는 것도, 또 기업가가 법률의 허점을 교묘히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것도 주가-드에 포함된다. 현재 인도 1위 기업인 릴라이언스 그룹(Reliance Group)을 세웠던 암바니(Dhirubhai Ambani)도 주가-드의 달인이었다. 그가 수입규제가 엄격했던 1991년 경제개방 이전에 쓸모없는 잡동사니들을 수출하여 수입허가를 받아 자신의 폴리에스터(Polyester) 공장을 확장하였고, 그것이 오늘 날의 릴라이언스 그룹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주가-드의 효용성을 증명하는 실례가 되고 있다. 또 2009년 ‘주가-드(Jugaad)’라는 이름의 인도 영화가 개봉된 일이 있었는데, 그 줄거리는 위기에 처한 사업가가 눈속임과 잔꾀를 통해 그 위기를 벗어난다는 것이다. 사실, 2010년 유가브(YouGov)에 따르면, 조사대상 인도 비즈니스맨의 81%가 주가-드가 ‘성공의 열쇠’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가-드가 인도 내에서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것은 나비아 라드주(Navia Radjou)외 2인이 2012년 ‘주가-드 기술혁신(Jugaad Innovation)’이라는 책을 출간한 이후 부터였다. 이 책의 저자들은 ‘과거 서구 국가들도 주가-드 정신이 있었지만 후기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그 정신을 상실했다.’고 전제한 후 ‘현재 서구기업들은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비에 비해 제한된 성과만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가-드의 6원칙 즉, ‘1. 역경에서 기회를 모색하라. 2.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해라. 3. 생각과 행동을 유연하게 하라. 4. 단순함을 유지하라. 5. 저소득층 소비자들을 주목하라. 6. 감성(感性)을 따르라.’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평소 ‘검약(儉約) 엔지니어링(Frugal Engineering)’의 신봉자였던 르노-닛산(Renault-Nissan)의 회장 곤(Carlos Ghosn)의 지지를 받아 더욱 유명해졌고 ‘하바드 비즈니스 리뷰(Havard Business Review)’ 등에도 이에 관한 논문들이 실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원래 자기 자랑에는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인 인도인들의 속성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그들은 주가-드가 ‘인도인들의 놀라운 창의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서 또 ‘인도뿐만 아니라 세계 기업들의 어려움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으로 까지 과대포장하고 있다. 그러나 주가-드는 어디까지나 결핍된 자원이나 기술을 대체하는 아이디어나 수단을 의미하는 것이지 인도인 특유의 기술혁신이나 전혀 새로운 경영기법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앞에서 언급했던 나비아 라드주 등도 인정한 사실이지만, 주가-드는 인도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은 아니다. 굳이 다른 나라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우리나라에도 여러 주가-드가 있었고 지금도 존재한다. 한때, 우리나라 택시의 대명사였던 시발(始發)택시는 한국전쟁 직후 미군들이 폐기처분한 지프들을 완전히 해체한 후 쓸 만한 부품을 모아 다시 조립해 만든 주가-드였다. 또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맥주깡통을 이어 붙여 만든 연탄난로용 굴뚝은 우리나라 겨울풍경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올해 사회문제가 되었던 가짜 국산 새우젓 사건, 새우젓을 특산품으로 내세우는 고장에서 중국산을 적당히 조미하여 국산 새우젓이라고 판매한 사건도 한국적인 주가-드의 범주에 드는 것이다. 한국도 주가-드에 있어서 인도에 지지 않는 역사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도 대기업이 도입한 주가-드의 대표적인 사례로 각광을 받았었던 따따(Tata)그룹의 자동차 나노(Nano)도 인도식 기술혁신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2009년 3월 이 자동차가 출시되기 전 인도의 신용평가회사 CRISIL은 그 시장점유율이 65%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었지만, 실제로는 해마다 판매량이 격감하여 2013년 4월에는 전년 동월에 비해 판매량이 88%까지 하락한 948대만이 판매되는 위기를 맞았다. 출시 초기에 나노가 주목을 받았던 것은 자동차의 성능이나 안전성이 아니라 그 가격 때문이었므로 10만 루피(약 200만원)라는 세계 최저의 가격이 매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는 동일모델의 가격이 15만 루피까지 상승했으므로 구매동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사족이지만, 자동차에 대한 평가기준이 높아지고 있는 인도 시장에서 나노는 ‘자동차치고는 무척 싸고 장난감치고는 엄청나게 비싼 물건’으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는 점도 판매량의 격감의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주가-드 또는 그 정신이 자원부족과 세계적 불경기에 시달리는 세계에 던져주는 그 나름대로의 의미는 충분히 있다. 자원재활용, 검약정신, 저소득층을 배려한 물품의 개발과 생산, 개인의 창의력에 대한 존중, 자립의지, 심지어는 유연한 상향(上向)식 의사결정을 통한 조직의 민주화까지 주가-드를 통해 구현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주가-드가 가진 본래의 의미가 ‘자원의 결핍 때문에 자주 사용되는 즉흥적인 조치 또는 과정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주가-드는 어디까지나 임기응변적인 것이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아이디어나 생산품도 ‘임시방편적 창의력(Improvised ingenuity)’에 의한 것이지 문제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아이디어도 아니고 기업환경의 변화에 대한 장기적인 적응방법이 될 수도 없다. 즉, 주가-드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위기에 대처하는 계기로만 사용해야지 그 위기의 수용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적용시키려고 든다면 정말 회복불능의 위기를 맞게 된다. 다시 말해 인도 농촌의 교통수단인 주가-드가 불편함을 덜어주는 수단이 되고 있지만 열악한 교통체계의 근본적인 치유책은 결코 될 수 없고 때로는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주가-드는 어디까지나 주가-드일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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