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초국경적 대기 오염에 시름하는 동남아

공동대응 필요성 제기

시민들의 건강과 각국 관광산업 위협하는 동남아의 초국경적 대기 오염

동남아시아에서 산불과 화전 농업으로 인한 대기 오염이 극심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입자 크기가 2.5마이크로미터(㎛, 100만분의 1미터) 이하인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라오스에서는 2023년 1월 말부터 대기 오염이 악화되었는데, 급기야 4월에는 미세먼지 기준수치(AQI, air quality index)가 위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471에 도달했다. AQI 300 이상의 대기 오염은 인체에 해로운 위험한 상태로 모든 사람이 실외 활동을 삼가야 하는 수준이다. 라오스 근처 태국의 북부 지역은 대기 오염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3월 25일부터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에서 2주 연속 AQI 300을 넘는 대기 오염이 계속됐다. 이에, 치앙마이 지방 당국은 대기 오염 저감을 위해 교통량을 줄이고자 공공 기관 및 민간 기업에 재택근무를 요청했다. 스모그는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태국에서 2023년 1월부터 3월 중순까지 17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흡기 질환, 피부 염증 또는 눈 화끈거림 증세를 호소했다. 한편 말레이시아에서도 스모그가 심해지면서 호흡기 문제로 병원 치료를 받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말레이시아 의료 전문가들은 2023년 4월 들어 갑작스러운 천식 발작, 천명음, 호흡곤란,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많아졌다고 밝혔다. 2023년 4월 중순 말레이시아 페낭(Penang)의 대기오염지수(API, Air Pollutant Index)는 건강에 유해한 수준을 기록했다. 4월 18일 저녁에 발릭 뿔라우(Balik Pulau)의 API 수치는 126, 바뚜 우반(Batu Uban)은 155, 딴중 붕아(Tanjung Bungah)는 103으로 모두 유해 범주에 들어갔다. API 수치가 101~200 이상이면 건강에 유해하고, 200 이상이면 매우 유해하다. 

아세안(ASEAN) 차원에서 미세먼지 저감 대책 마련 촉구하는 태국, 라오스 · 미얀마와 초국경적 연무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에 합의

태국 정부가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발생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세안(ASEAN) 회원국에 협조를 구했다. 쁘라윳 짠오차(Prayut Chan-o-cha) 태국 총리는 대기 오염 물질이 국경을 넘나드는 월경성 환경 문제이므로 개별 국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잔 시마차야(Wijarn Simachaya) 태국환경연구소(Thailand Environment Institute) 소장은 아세안 국가들이 법 집행에 진정성을 띠지 않아 월경성 연무 억제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3월 29일부터 4월 1일까지 카오 킴 혼(Kao Kim Hourn) 아세안 사무총장과 돈 쁘라뭇위나이(Don Pramudwinai) 태국 외교부 장관이 아세안연무방지협정(ASEAN Agreement on Transboundary Haze Pollution) 기반 지역 협력 증진을 위해 회담을 가졌고, 인접국들인 태국, 미얀마, 라오스 정부 당국자들도 연무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동남아 대기질 악화 원인으로

전통적 농업 관행과 계절적 요인 등 지목

산업 발전, 계절적 요인, 화전 농법 등 복합적 요인이 태국 대기질 악화 원인으로 지목

태국에서 대기 오염 원인은 계절적 요인이 강하다. 태국은 쌀, 사탕수수, 고무 및 기타 작물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 중 하나인데,  많은 농가 밭을 개간하고 파종을 준비하기 위해 밭에 있는 잔여물과 임야를 소각하는 화전(火佃)을 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된 엄청난 양의 연기와 연무가 국경을 넘어 먼 거리를 이동한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보고서에 따르면 농업은 태국 PM2.5 이하 초미세먼지 배출량의 약 18%를 차지한다. 특히, 11월부터 4월까지 건기가 이어지면서 태국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대기 오염이 극심하게 나타난다. 게다가, 낮은 강수량과 풍속, 높은 습도 및 온도 역전 현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오염 물질을 지면 근처에 가두어 대기 오염을 심화한다. 그리고, 석탄 화력발전소는 이산화황(SO2, sulfur dioxide), 질소 산화물(NOx, nitrogen oxides), 수은 및 PM2.5 미세먼지 같은 온실 가스와 대기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주범이다.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동남아시아 지부(Greenpeace Southeast Asi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의 석탄발전소는 2019년에 이산화탄소 1,200만 톤(t)과 PM2.5 미세먼지 7만 7,000톤을 배출했다. 이 때문에 주민 1,550명이 조기 사망하고 3만 1,000명이 천식에 시달리고 있다. 

제조업 역시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데, 예를 들어 태국 라용(Rayong) 지방에 있는 맙 타 풋(Map Ta Phut) 산업 단지에 있는 화학 공장은 발암 물질로 알려진 벤젠을 포함하여 100가지 이상의 유해 물질을 대기로 방출한다. 교통수단 역시 대기 오염 원인으로 꼽힌다. 태국 환경자원부(PDC, Pollution Control Department)에 따르면 교통수단이 방콕(Bangkok)에서 PM2.5 미세먼지 배출량의 약 52%를 차지한다. 2019년 방콕에서 검사된 차량의 60% 이상이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미얀마, 국경 지역 산불과 화전 농법으로 미얀마와 국경 접한 라오스와 태국에 피해

미얀마에서 산불과 화전으로 인해 태국의 치앙라이(Chiang Rai)주가 심각한 대기오염에 몸살을 앓았다. 2023년 3월 말 치앙라이에서 PM2.5 미세먼지 수치가 안전 한도보다 10배나 높은 542로 급증했다. 치앙라이 주민들은 대기 오염 방지를 위해 태국 주변 국가와의 협상을 아세안 의제에 포함하는 등 장단기적 해결책을 모색하라고 지방 정부 당국에 요구했다. 치앙라이 상공회의소(Chiang Rai Chamber of Commerce)는 치앙라이가 매년 심각한 대기 오염에 시달리는 데 2023년의 대기 오염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고 밝혔다.

대기 악화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농업 폐기물 소각 관행과 화전 농법… 다른 선택이 없는 가난한 농민들

태국과 라오스에서 가난한 농민들은 농지에 있는 쓰레기를 치워 경작 면적을 확장하는 동시에 수확량을 늘릴 수 있는 저렴한 방편으로써 화전을 선택한다. 콤바인 수확기를 활용하면 농작물 폐기물을 잘게 잘라 치울 수 있지만, 산악 지방의 가난한 농민들이 그런 값비싼 기계를 살 여력은 없다. 게다가 대개 신용 상태가 불량한 농민들이 종자, 비료, 살충제를 구입하기 위해 상인들로부터 높은 이율로 돈을 빌리는 바람에 부채의 덫에 걸려 있다. 따라서, 농민들은 빚을 갚지 못해 땅을 빼앗길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환경운동가들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농민들로부터 농작물을 사들이는 대기업들은 공급망이 대기 오염에 유발하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기 오염 저감을 위한 아세안 각국 정부의 노력

태국, 총선 앞두고 표심 얻기 위한 대기 오염 문제 해결 관련 공약 쏟아져

태국에서 대기 오염은 총선을 앞두고 뜨거운 현안으로 부상했다. 태국 민주당(Democrat Party)의 옹가트 클람파이분(Ongart Klampaiboon) 부대표는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는 모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라고 운을 뗀 뒤, “당이 대기 오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고, 주민들, 학계 및 관련 당사자들과 협력하여 건강에 해로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태국 민주당은 대기 오염 기준을 설정하고 청정에너지 및 오염 제어 기술의 혁신을 촉진하고, 무책임하게 대기 오염을 유발하는 개인, 기업 및 조직에 세금 및 수수료 등 환경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기오염방지법(Clean Air Act)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태국 민주당은 방콕 내 16개 지구에서 시범적으로 대기오염물질 저배출 구역을 지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프어타이당(Pheu Thai)은 대기 오염 방지법 외에도 청정에너지 및 전기 자동차 홍보, 방콕 및 인근 지방의 학교에 공기 청정기 설치를 대기 오염에 대한 대책으로 내놨다. 

한편, 재선을 노리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천연자원환경부(Ministry of Natural Resources and Environment)와 다른 기관들이 스웨덴 모델을 기반으로 삼림 면적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시민 사회에 나무 심기를 독려하고 야외 소각 행위를 금지하겠다고 강조했다. 5월 14일 총선 개표 결과 제1당으로 올라설 것이 유력한 전진당(Move Forward Party)은 “태국 국민이 대부분이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선거가 태국의 큰 전환점을 의미한다”고 밝히면서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했다.

베트남, 2022년에 내연기관차량의 단계적 퇴출 계획 담은 대기오염 저감 마스터플랜 완성… 라오스 정부는 3월 말 대기오염 저감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

베트남 정부가 화석 연료 차량을 없애고 배기가스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도시 지역에 더 많은 녹지 공간을 추가하기로 계획했다. 2023년 4월 팜민찐(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는 심각성을 더해가는 환경 오염을 막고 긴급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을 단계적으로 개선 및 복원하기 위한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팜민찐 베트남 총리는 ‘2030년까지의 환경 보호를 위한 국가 전략(National Strategy for Environmental Protection to 2030)’을 승인했다. 베트남 정부는 휘발유, 경유 등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자동차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드맵을 마련하고, 깨끗하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 자동차 외에도 자전거 같은 무동력 친환경 이동수단의 사용을 촉진할 계획이다. 라오스 농림부도 대기오염 저감을 위해 국방부, 공안부 및 지방 당국과 협력하여 숲을 순찰하여 화전 농업 활동을 감시하기로 했다.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라오스 정부는 간담회를 열어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경제·투자·관광·사회문제 등 현안 해결과 소셜미디어(SNS) 부정적 댓글 대응에 집중하도록 지시했다.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들, 역내 전기차 생태계 개발에 관한 선언문 채택… 의장국 인도네시아, 국제 행사에서 전기자동차 사용 촉진

5월 10일 인도네시아 라부안 바조(Lubuan Bajo)에서 열린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42nd ASEAN Summit)에서 온실가스 배출 감소, 에너지 전환 가속화, 역내 육상 운송 부문 탈탄소화, 탄소중립 목표 달성, 전기차 도입, 각 회원국의 에너지 안보 개선을 위한 아세안 차원의 노력의 중요성 등을 확인하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아세안 정상들은 모든 아세안 회원국이 참여하는 지역 전기 자동차 생태계 개발을 약속하고, 아세안을 글로벌 전기차 생산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아세안 정상들은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 지역 표준을 설정하고 조화와 국제 표준에 따라 교육·인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한, 아세안 정상들은 역내 전기차 산업의 가치 사슬을 강화하고 상호 운용성 및 원활한 국경 간 이동을 보장하기로 했다. 

한편, 2023년도 아세안 순회의장국인 인도네시아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전기 자동차 사용을 촉진하기 위해 모범을 보였다. 인도네시아 내무부는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이 탑승할 의전용 차량으로 전기차를 제공했다. 차우준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현대자동차가 2022년 발리(Bali)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도 의전 차량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4월 13일 스티아 우타마(Setya Utama) 인도네시아 내무부 장관은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 때뿐만 아니라 다른 국제 행사에서도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기자동차 사용을 통한 녹색 에너지 촉진에 항상 노력해 왔다”고 강조했다.